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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꽃피는 것도 보기 싫어요, 4월이 오지 않기를 바라요"유가족·시민 한목소리로 "진상규명" 외쳤다
▲ 세월호 참사 5주기인 16일 오후 한 아빠가 아이를 무등 태워 기억식 장소인 화랑유원지로 걸어가고 있다. <정기훈 기자>

그날 이후 다섯 번째 맞는 4월16일. 벚꽃은 눈치도 없이 경기도 안산 고잔역 앞에 흐드러졌다. 세월호 참사 5주기 시민 추모행진에 함께한 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았다. 행진하는 내내 봄바람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함께 걷던 이들의 발걸음은 단원고 안에 있는 4·16 세월호 참사 추모조형물 '노란 고래의 꿈' 앞에서 멈췄다. 261명의 단원고 희생자 이름이 기록된 표지석 앞에서 유족들은 눈물을 훔쳤다.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기는커녕 그리움만 커져요." 단원고 앞에 마련된 노란 우체통 앞에서 편지를 꾹꾹 눌러쓰던 조민영(22·가명)씨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 이야기했다. 단원고 담벼락에 걸린 색 바랜 노란리본은 바람에 흔들렸다. 행진은 고잔역에서 시작해 4·16 기억교실과 단원고를 거쳐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이 열린 화랑유원지까지 이어졌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민영씨는 세월호 참사로 가족 같은 친구를 잃었다. 조씨는 "꽃이 피는 것도, 흩날리는 것도 싫다"며 "3월 뒤에 바로 5월이 왔으면 좋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이맘때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한다. 4월만 다가오면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 그를 괴롭히고 추모식이 끝난 뒤 심하게 앓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조씨는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비난만은 멈춰 달라. 그리고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감정이 북받쳤는지 한마디를 할 때마다 숨을 골랐다.

▲ 안산 고잔역에서 출발해 단원고에 들른 시민들이 고래 모양 추모조형물 주변에서 바람개비를 들고 서 있다. <정기훈 기자>

추모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안산에 사는 배현정(34)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는 모두 한동네에 살아 오면가면 스쳤을 아이들"이라며 "세월호 참사 이후 매년 추모식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2시간30분 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는 최지원(20)씨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것밖에 없다"며 "리본을 가방에서 떼지 않고 달고 다니며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산청군 간디마을학교에서 단체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왔다는 김태린(15)양은 "진심을 담아 먼저 간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추모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사건의 재발을 막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에 유가족과 시민들이 앉아 있다. 뒤로 대단지 아파트가 솟았다. 행사장 길 건너편에서는 추모공원 조성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정기훈 기자>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 이뤄져야"

행진 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재단 주관으로 16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 3주차장에서 '세월호참사 5주기 기억식'이 열렸다. 추모의 사이렌 소리가 1분 동안 화랑유원지를 가득 채웠다. 기억식에 참여한 이들은 눈을 감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참사를 전면 재수사해야 한다"며 "무능과 무책임, 잘못된 관행으로 304명의 희생자를 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가족과 국민 앞에서 세월호의 완전한 진상규명을 다시 한 번 약속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의 진실을 반드시 인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눈물로 호소하던 유족분들에게 죄인이 된 심경"이라며 "완전한 진상규명으로 온전한 추모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는 "무능력했던 어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먼훗날 너희들에게 가는 날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참사로 먼저 세상을 등진 친구들에게 약속했다.

세월호 참사 후 5년이 흘렀지만 진상규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오히려 은폐의혹은 자꾸만 커지고 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세월호 참사 당시 해군이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를 수거한 뒤 같은해 6월22일 DVR을 수중에서 인양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4·16가족협의회는 특조위 발표 이튿날 "세월호 CCTV 저장장치 조작은폐 증거가 드러났듯이 세월호 참사는 검찰의 강제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범죄"라며 "정부가 특별수사단을 설치하고 전면 재조사에 나서 달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했다. 특별수사단 설치와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은 16일 오후 7시 현재 18만9천명을 넘어섰다.

▲ 정기훈 기자

"아직 갈 길 먼 세월호 진상규명"

5년 전 이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아이들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참사 이후 처벌받은 정부 책임자는 김경일 해경 123정장 1명뿐이다. 구조를 해태하고 이런 사실을 감추려 했던 책임자들은 모두 빠져나간 것이다. 지난 15일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등 17명을 처벌해야 할 정부 책임자로 지목했다.

의혹으로 남아 있던 과거 정부 만행도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세월호 TF'를 꾸려 유가족들 정보를 수집하고 불법사찰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은 기무사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15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배서영 4·16연대 사무처장은 "국내 최고 정보권력기관인 기무사가 유가족을 불법사찰한 것은 책임자를 은닉하고 진실을 은폐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순철 생명안전 시민넷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민들이 국가 존재 이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 재난·참사 피해자가 혼자 오롯이 피해를 감당하려 하지 않고 재발방지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현상은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진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럼에도 안전과 관련한 정부 당국의 인식과 법·제도 개선은 미진한 편”이라며 “국민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부분에 대한 공동체적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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