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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협약 ‘비준권’과 ‘동의권’을 혼동하지 말자
▲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투쟁에서 노동운동이 ‘선 입법’에서 ‘선 비준’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일이다. 선 입법은 제도적 장벽을 투쟁과 교섭으로 돌파하는 운동 원칙에 반하는 전술이고, 대통령에게 비준권을 보장한 헌법의 선 비준 조항(73조)을 보더라도 불필요한 일이다. 대통령의 비준권과 국회의 동의권을 혼동해선 안 된다. 헌법상 국회가 가진 것은 조약을 비준하는 권한이 아니다. 국회는 대통령이 비준한 조약이 재정과 입법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한해 동의권을 가질 뿐이다(60조).

국회가 동의를 거부해 대통령이 비준한 조약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를 두고 비준권을 국회가 갖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는 의회제가 아니라 3권 분립에 기반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국회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이례적인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통령이 올린 입법안을 국회가 거부하듯, 대통령이 비준한 조약을 국회가 거부할 수 있다. 법의 지배(the rule of law)가 아닌 법을 통한 지배(the rule by law)를 꿈꾸는 법률가들이 만들어 낸 논리에 휘둘려, 대통령 비준권과 국회 동의권의 자연스러운 갈등과 충돌을 두고 ‘위헌’ 운운하는 것은 대통령제와 3권 분립을 전제하는 현존 헌정 체제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대통령이 비준한 조약에 대한 동의를 국회가 거부해 국제법과 국내법의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을 미리 염려하며 큰일 날 것처럼 떠벌리는 자들이 있다.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 중에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거쳐 ILO 협약을 비준한 다음 이에 대한 동의를 국회에 요청했는데, 국회가 거부했다고 가정해 보자. 관계부처 장관은 국무회의 의결 다음날 ‘비준 의향서’를 ILO에 보낼 것이고, 이후 1년이 지나면 ILO는 관련 협약이 한국에서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것이다. 그리하여 대통령이 비준한 국제법과 국회가 고집하는 국내법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국제법과 국내법, 신법과 구법이 해석과 효력의 문제로 충돌할 때 이를 판단하는 일은 사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노동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사실상 6심에 달하는 탄탄한(?) 법률 기관을 갖추고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헌법재판소까지 층층으로 공인노무사·변호사·법대 교수·판검사 등 법률가들이 관여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법기술자가 아니라 법률가라면 국제법과 국내법의 충돌을 해결하려는 적극적 자세와 전문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법률가들은 미국의 경제사학자 니엘 퍼거슨이 말한 “정체된 사회의 기생충”에 다름 아님을 자신들의 무기력과 무능력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퍼거슨은 <대타락>이라는 책에서 “변호사는 역동적인 사회에서는 혁명가가 될 수 있지만 정체된 사회에서는 기생충이 된다”고 일갈했다. 퍼거슨은 정체된 국가의 특징으로 “부패하고 독점적인 엘리트들이 자기 이득을 위해 법과 행정 체계를 착취하는 능력”을 꼽았다. 그는 “법치의 적”으로 사회의 기생충으로 전락한 “법률가들의 지배(the rule of lawyers)”를 비판한다.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국제사회의 최저기준으로 확인한 ILO 협약 87호(노사에 대한 결사의 자유와 노동자에 대한 단결권 보장이 주요 내용), 98호(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금지가 주요 내용)의 비준을 방해할 목적으로 법기술자들이 개발한 다양한 논리가 횡행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선 입법론인데, 법률가 누구 하나 선 입법의 헌법적 근거와 법률적 논리를 대지 못하고 중언부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헌법 73조가 조약 비준권을 대통령에게 주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국 관료와 법률가들의 창의적(?) 발명품인 ‘입법 완성기’와 ‘입법 형성기’ 논리를 들이대는데, 이들은 입법 형성기 나라일수록 노동권을 억제하기 위해 '법률-시행령-시행규칙-행정해석'에 더해 심지어 지자체 조례까지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돼 있는지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서는 입법 형성기며, 자본가를 보호하는 데서는 입법 완성기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ILO 협약을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이 먼저 비준하면 위헌 시비에 휘말린다는 주장이 노동운동 안에서도 돌아다니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헌법은 국회의 사전 동의가 아니라 국회의 동의를 규정할 뿐이다. 국회의 동의 여부는 조약을 비준하려는 대통령의 의지와 행위를 구속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비준했으나 국회가 동의하지 않는 조약의 효력 문제는 사법부가 판단하면 된다. 사정이 이렇기에 한 연구자는 “ILO 협약과 관련해 국회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지 여부가 규범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체결한 조약 중 국회의 동의를 받은 조약은 30% 이내”라고 썼다. 이런 현실로 인해 자칭 타칭 ILO 전문가로 선 입법론을 앞장서 설파했던 어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랜 B로 선 비준을 고민한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노동운동 안의 논의는 선 비준으로 모아졌다. 이는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에서 큰 진전이다. 그런데 선 비준이 맞지만 제대로 비준되기 위해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엉뚱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선 입법론의 진화 버전이다. 이 논리는 대통령의 비준권과 국회의 동의권을 여전히 섞어 이해하는 것으로 과학적이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의 비준과 국회의 동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치적 행위다. 이를 뒤섞어 법률주의에 물든 선 입법 전술처럼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의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비준하면 되는 정치적 문제를 두고 극우들이 판치는 ‘국회 동의’ 운운하는 저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globalindustryconsult@gmail.com)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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