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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 흔드는 탄력근로제 기간확대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 청년이 있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무더기 해고한 이랜드 회장이 2010년 서울대에 강연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은 항의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에서 그 청년이 제안한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볼까요? ‘사랑하는 ○○○’ 대신에 ‘이랜드 노동자들의’ 생일 축하합니다로.” 그들은 같이 노동자들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그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6년 뒤 방송국 PD로 입사했다. 그리고 입사 9개월 후 그는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하루에 20시간이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후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촬영기간 중 다른 노동자와 같이 하루에 두세 시간 자는 날을 반복하며 55일간 딱 이틀 쉬었다. 그리고 다른 계약직 노동자를 해고하고 급여를 환수하는 역할도 도맡아야 했다. 회사는 그런 그를 더욱 다그쳤고 그가 의욕을 잃을수록 부적응자로 몰아갔다. 그는 촬영이 다 끝나 가는 시점에서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그건 아마도 그가 몸소 경험하고 또 관리자로서 독촉했던 폭력적 노동상황이 너무나 만연해 있고 거대해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그는 업무의 고충을 그 업종의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장시간 노동 국가이며, 동시에 수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다. 연간 1만3천명 정도가 자살을 하고 이 중 반 정도는 직장인이다. 또 보건복지부의 ‘한국의 자살 실태 보고서’에는 경찰 초동수사 결과 업무와 관련성을 보고한 자살자만 해도 연간 560명에 이른다. 일본은 1999년부터 과로로 인한 자살을 산재로 인정하고 있고, 2007년을 기점으로 과로사보다 과로자살에 대한 인정 건이 더 늘어난 상태다.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많이 일하고 많이 목숨을 끊지만, 과로로 인한 자살 규모는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장시간 노동과 직무스트레스로 대표되는 과로사와 과로자살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인들이 알려져 있다. 주당 같은 시간을 근무해도, 장시간 집약적인 노동시간을 가진 군이 규칙적인 노동을 하는 군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와 피로를 겪고 삶의 질이 떨어지며, 노동시간 통제력이 낮은 불규칙 근무시 우울증상이 악화된다는 보고도 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한 달 10일 이상 할 경우 우울이나 불안장애를 겪는 경우가 2.5배 증가하는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많은 나라에서는 불규칙적이고 집약적인 장시간 노동의 건강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1일 근무시간 상한을 정하고 있다. 독일은 1일 법정근로시간이 8시간이며 6개월간 평균 근로시간이 일평균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1일 10시간 노동을 허용한다. 프랑스는 1일 10시간, 1주 48시간, 연속하는 12주를 평균해 1주 44시간의 한도를 정하고 있으며 일본은 1일 10시간 상한, 1주 52시간 한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핀란드는 1일 8시간 이상 노동은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벨기에는 1일 최대 11시간, 주 50시간의 상한이 있다. 대만도 1일 12시간에 연장근로시 한 달 평균 46시간 상한을 가지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여야가 합의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이미 살인적이다. 그것을 그나마 정상에 가깝게 바꾸는 중이다. 그리고 그 살인적이던 노동시간이 실제로 감소하고 있는지도 사실은 확인이 잘 되지 않고 있다(노동시간단축 및 탄력적 근로시간제 운용실태 분석, 황선웅). 그런데도 다급한 듯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서두르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단한 건강보호 조치인 양 최저 11시간의 연속휴식시간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1일 24시간 단위의 11시간 휴식이 아니고, 근무 종료 기준의 연속휴식 규정이다. 따라서 하루 근무시간을 1박2일로 상한 없이 늘려도 근무가 끝나야 쉴 수 있는 것이다. 건강보호에 보다 핵심적인 1일 상한을 피해 나갈 뿐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노조 조직률이 10% 내외인 상황에서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로 예외가 허용된다.

방송계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음에도 주당 근무일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여전히 하루 20시간의 장시간 집약적 근무가 이뤄진다고 보고되고 있다. 고 이한빛 PD의 몸과 마음을 절망으로 몰고 간 거대한 그것은 여전히 약해지지 않고 있다.

이선웅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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