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선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2018년 12월11일 새벽 3시, 스물넷 꽃다운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씨는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회사는 2인1조 작업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안전규정을 지켰다면 청년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사람중심의 예산안이 되도록 국정철학을 담아 설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 예산안에는 위험에 내몰린 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과 안전에 대한 예산은 없었다. 2인1조 규정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예산도 배정하지 않았다. 진정 사람중심의 예산이었다면 사람을 살릴 수 있어야만 했다. 죽음을 방치한 예산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죽음이 마치 운명 같지만 막을 수 있었다면 인재인 것이다.

여기 또 하나 사람 잡는 국가정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의 방만경영을 바로잡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계획 운용지침'을 확정하고 밀어붙였다. 공기업부터 복지제도를 마구잡이로 없애기 시작했다. 기준은 따로 있지 않았다. 공무원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는 조건은 끌어내릴 것, 그것뿐이었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된 기업은행도 30여개 제도가 폐지되거나 축소됐다. 그중 가장 뼈아픈 것은 안전·생명과 직결된 제도가 축소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건강검진 비용이 대폭 축소됐고 인병(因病)휴가휴직 기간이 크게 단축됐다.

제도 후퇴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방만경영 잡겠다던 정책은 사람 잡는 결과를 낳았다. 필자도 함께 근무했던 지점장을 혈액암으로 잃어야 했다. 인병휴직 시점부터 내내 항암치료만 받았으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결국 복직 3개월 만에 암은 재발했고, 그해 세상을 떠났다. 인병휴직 기간이 짧아지면서 건강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현장으로 다시 끌려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예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은 명확해진다. 2012년부터 박근혜 정부가 복지제도를 축소한 2014년까지 사망에 이른 노동자는 7명이었다. 하지만 복지제도 축소 후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사망한 노동자는 25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대부분 암·뇌심혈관질환으로서 조기 발견시 치료 예후가 좋지만, 발병시 재발과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다. 건강검진 비용 축소로 질병의 조기발견 확률이 줄어들었음에도 인병휴가휴직 직원은 오히려 급격하게 늘었다. 2010~2014년 96명이던 인병휴직 직원은 2015년 이후 157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해소될 기미 없이 누적된 업무강도와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결과적으로 건강검진비 축소는 질병의 조기발견 기회 상실로, 인병휴가휴직 기간 단축은 질병의 재발로 이어져 고귀한 생명을 앗아 갔다. 정부 정책에 의한 의도된 살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일치한다. 위암 수술 후 재발한 환자 중 2년 내 재발한 비율은 68.4%(인제대 서울백병원 위암센터), 대장암의 경우 수술 후 약 40%가 재발하며 대부분 수술 후 2~3년 내에 발생한다고 밝혔다(서울 삼성병원 암교육센터). 뇌졸중의 경우도 심각했다. 2005년 뇌졸중 발생환자는 4만9천726명으로 10년 내 44.4%인 2만2천242명이 사망했고 사망자 중 74.1%가 2년 내 사망했다(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인병휴가휴직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학계가 설명하고 있다.

사람 잡는 정책은 그 자체가 적폐의 산물이다. 비용 문제로 볼 게 아니라 생명과 안전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어느 공기업 노사는 직원들의 휴가를 기부받아서 투병 중인 직원에게 나눠 줘 모자란 인병휴가휴직 기간을 보전하겠다고 나섰다. 오죽했으면 이런 논의까지 나왔겠는가.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고육지책이다. 정부당국이 이런 상황을 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는 국민 생명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 공무원 인병휴직 기간이 3년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인병휴직 기간도 3년이다. 노동환경이 한국보다 훨씬 좋고 안전한 주요 선진국들조차 3년인데 우리는 최대 2년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모토를 내건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공공기관 안전강화 종합대책'의 핵심 내용 중에는 ‘민간을 선도하는 안전 인프라 구축’과 함께 ‘공공기관 안전관리 강화에 필요한 예산 적극 지원’이 있다.

공무원도, 공공기관 직원도 국민이다. 공공 분야부터 노동안전 정책을 선도해 민간기업을 견인해야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가장 확실한 대책은 실행이다. 예산은 실행을 뒷받침한다. 우선 박근혜 정부 시절 국민에게 빼앗은 안전과 생명에 관한 예산부터 복원해야 한다, 인병휴가휴직 제도와 같은 노동현장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가 선진국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공공부문을 필두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정부에 묻는다. 생명, 그것을 꼭 싸워서 주고받아야 하겠는가? 사람이 먼저다! 맞다. 생명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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