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남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사업단 활동가)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전화번호다. 전화를 받자,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애타는 사정과 심장 뛰는 긴장감이 서려 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선생님이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자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여기부터 풍문에 휘둘리지 않고 현장에서 권리를 찾으려는 그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화를 걸어온 보육교사, 그가 가진 고충의 중심에는 혼란이 자리한다. 사업주가 퍼뜨린 풍문이나 언론매체에서 들었던 소문에 익숙해진 나머지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법이 정말 나를 보호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고, 혼란을 겪는 것이다. “쉴 수 없는데 휴게시간에 알아서 잘 쉬라”는 허무맹랑한 지시와 “그럼 쉬었으니 쉬었다는 서명을 하라”는 되도 않는 이야기부터 “사업장 여건이 힘들어서 연차는 못 쓴다”는 말이 사실이냐는 문의, “육아휴직을 사용하니 보조교사로 직무를 변경해야 한다”는 불리한 처우, 지난 몇 년간 연말정산 환급금을 받은 적이 없다는 혼란, “다짜고짜 그만 나오라고 해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울분까지.

누구도 영세 사업장 사업주는 노동법 밖에 있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준법의식이 결여된 상당수 사업주와 사회문화적으로 불편함을 감내하는 역할에 충실한 노동자,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풍문 덕택에 근로기준법은 있으나 마나 한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 이렇듯 영세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자료 역시 산재해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장 규모별 체불 현황을 보면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임금체불액 규모는 전체의 67%를 넘는다.

전화기 너머 보육교사에게 “선생님도 노동자고,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습니다”라는 위안을 던지며, 누군가가 만든 풍문은 거짓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노동법이 생각보다는 촘촘하고 세세하게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는 과감한 설명을 마치고 나면, 다소 들뜬 목소리가 들리고, 다음 질문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소한 법이라도 지키게 하려면 노동조합이 필요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기다리면, 이제는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노동조합에 대한 살벌한 풍문이 다시 한 번 떠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나요?” “시키는 거 다 해야 하지 않나요?” “원장(사용자)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제 가족 중에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요.”

모든 이야기의 앞에는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이 생략돼 있다. 2017년 9월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조합이 불평등 완화에 기여한다는 여론 변화와 노동조합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고조된 분위기를 통계자료로 발표했지만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그려지는 살벌한 풍경은 여전히 자연스럽다.

살벌한 풍경은 법적인 테두리 밖인 사적인 테이블에서 그려진다. 사장이 노동조합을 혐오하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처벌받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취업을 방해하는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처벌을 받는다. 해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영세 사업장에는 주변부 인물이 없고, 대다수가 사업주·이용자와 얼굴을 맞대고 노동력을 제공한다. 어린이집 경우에는 사용자인 원장, 이용자인 학부모, 노동자인 동료 교사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 늘 그래왔듯이 노동자는 감내의 미덕을 장착하기 일쑤다. 사적 관계로서의 누나·언니·형·오빠가 공적 관계인 노사관계를 지배해 버리고, 일하면서 홀로 권리를 주장할 방법은 녹록지 않다.

켜켜이 쌓인 역사의 지층을 다져서 변화하고 있는 대한민국헌법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노동 3권을 적시해 뒀다. 그리고 헌법 요청에 부응하고자 노조법이 제정돼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를 보호한다. 법적 보호를 받으며 정당하게 근로조건 향상을 꾀하기 위한 노동 3권의 문은 단결권의 행사, 즉 “노동조합 결성·가입”으로 열 수 있다.

역시나 어쩔 수 없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자로서 근로조건 향상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요구를 할 필요도 없다. 아쉽지만 당연히 준수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이라도 지키라고 말해 봐야겠다. 그저 근로기준법이라도 지키라는 것. 법을 지키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작은 요구지만, 사적인 관계로 뒤범벅된 사업장에 공적인 집단으로서의 시선을 사업장에 들이대 보자. 그 공적인 집단이 노동자가 주체가 돼 2명 이상으로 조직된 단체가 노동조합이다. 우리 모두는 혼자서 해결하지 못할 때 동료와 이웃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줄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내 옆에 있는 동료 또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방법으로서의 노동조합. 이제는 풍문을 깨고 공식적인 광장에 나와 동료 이웃과 함께해도 좋다.

전화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 “동료나 이웃 교사분들과 함께 오세요. 다음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상담 자리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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