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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과 안정성
▲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사회적 대타협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실현하겠다. 덴마크의 노동 유연안정성 모델을 도입하겠다.” 지난 11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한 교섭단체대표연설이 노동현장 토론 주제로 오르내리고 있다.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그의 이력만으로도 그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귤도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우리 노동현장과 노동시장이 ‘유연성’과 ‘안정성’이라는 전혀 상반된 이념을 지금 동시에 만족할 만큼 성숙한 환경일까.

잘 알려져 있듯이 북유럽은 그야말로 노동선진국이다. 러시아 사회가 경험한 것과 같은 급진적 혁명이 없었을 뿐이지, 유럽 사회는 산업화 이래 100여년간 노동자가 모든 사회변혁의 중심에 있고 현실정치에서도 노동자 중심 정당이 여전히 강력하다. 겨우 11%에 불과한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에 비해 덴마크 조직률은 무려 80%에 육박한다. 말 그대로 노동자와 시민·주권자를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는 사회다.

덴마크 노동환경을 소개한 기획방송을 본 적이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지급’ 원칙이 확고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라는 말이 없는 사회, 임금결정 과정이 노사의 자율적인 합의로 이뤄지는 나라,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은 물론 복지와 승진에서도 차별이 없는 나라가 덴마크다. 아마도 덴마크에서 비정규직은 ‘노동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직군을 이르는 말’ 정도로 이해될 뿐이다.

사회안전망을 대표하는 실업급여 기간도 최장 4년, 80% 넘는 아버지들이 육아휴직을 원하는 나라가 바로 덴마크다. 결국 유연성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이는 ‘역동적이지 못한, 나태해지기 쉬운 사회’라고 비판할 정도의 튼튼한 안전망을 갖춘 사회다. 안전망은 언제나 유연성에 우선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그 어느 사회보다 유연성이 높다는 평가가 대세다. 평균 5년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근속연수가 잘 보여 준다. 안정성은 어떤가.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 실업부조제도 등을 확충하고 있다고는 하나 노동선진국들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홍 원내대표가 언급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노동시장이 개혁 대상이라는 데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그 방법에 관한 인식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처한 입장에 따라 ‘동상이몽’이라고나 할까. 노동시장 양극화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먼저 찾지 않고, 홍 원내대표의 발언이 이른바 ‘고임금 노동자들의 양보’를 염두에 둔 ‘대타협’을 주장한 것이라는 아전인수식 망발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임금동결’을 강조한 것을 보면 그의 발언이 그리 해석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희망하건대 모든 사회주체가 공감할 수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어야 한다. 특히 노동자들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원인을 노동자들 내부의 분배 문제에 한정해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홍 원내대표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 굳이 대기업의 대단한 사내유보금을 말하지 않더라도 각종 통계는 우리 사회의 부가 급격히 자본측으로 편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노동자 간 양보를 말하기 이전에 자본과 노동 간 균형을 잡아가는, 왜곡된 ‘사회구조개혁’을 전제로 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덴마크는 수평적인 사회입니다. 노동자라고 해서, 힘든 일이라고 해서 임금과 사회보장에서 차별받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자로서 본 덴마크 모습에 대한 평가다. 이들은 “(세금을)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고 말한다. “100여년 동안 쌓아 온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며 오늘의 덴마크 사회가 그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사회 문제를 해소해 보겠다는 그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노사정 합의 사항은 국회 입법에서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여러 번 밝히고 있다. 입법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과, 제도의 성질과 그 영향을 감안할 때 노사정이 반드시 합의해야 할 제도들은 쌓이고 쌓여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중심이 돼 사회적 대화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주길 홍 원내대표에게 건의한다. 예를 들어 경사노위가 합의한 한국형 실업부조 관련 합의, 양극화 해소와 고용플러스위원회 설치 합의 등 사회안전망 핵심 제도를 ‘합의된’ 채로 두고서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말할 순 없지 않는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김형동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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