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영철 변호사(법무법인 민심)

대상판결 : 부산고법 2019. 2. 13. 선고 2018누22333 판결


1. 사건 발생 경위

이○○씨(1962년생)는 1988년 3월부터 현대정공 울산 2공장에서 페인트부스 송풍기 탈부착작업 등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벤젠’에 노출됐다(4년6개월간 근무, 누적노출량 연간 10피피엠). 1991년 10월 부산대병원에서 ‘골수 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았으나, 당시는 위 상병과 페인트 취급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이듬해 2월 퇴직하고 말았다. 퇴직 이후 걷는 과정에서 통증이 악화돼 병원에 갔더니 2000년 5월 ‘양측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라는 판정을 받았고,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중 증세가 더욱 악화됐다. 그는 2001년 7월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무혈성 괴사’가 발병한 것으로 잘못 알고 무혈성 괴사에 대해서만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불승인 처분했다.

이에 그는 2002년 3월 부산지법에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고관절 무혈성 괴사와 공사현장에서의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고 2004년 11월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로 확정됐다(이하 ‘종전 판결’이라고 함).

이후 그는 낙담해 실업 속에서 고통을 받다가 2015년 낯익은 단어를 신문에서 보게 됐다. ‘골수 이형성증후군’. 삼성전자 여성 노동자들이 업무상재해로 인정되면서 언론에 등장한 병명이다. 이에 용기를 얻은 그는 부산에 있는 산재전문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변호사는 종전 판결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그 당시는 골수 이형성증후군에 무지했던 시절이고 현재도 재해자 증상이 계속 진행 중이므로, 다시 산재요양 신청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2015년 9월 ‘골수 이형성증후군 및 양측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에 관해 요양급여를 다시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1년 이상의 역학조사를 거쳐 2017년 3월 골수 이형성증후군에 관해서는 요양을 승인했으나, 무혈성 괴사는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골수 이형성증후군 치료과정에서 부신피질호르몬이 아닌 아나볼릭스테로이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골수 이형성증후군 치료 과정에서 투약한 약제와 무혈성 괴사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정했다. 남은 쟁점은 골수 이형성증후군 치료 과정에서 사용된 약제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사이에 관련성이 있는지 여부였다.

울산지법에서 1심 소송이 진행됐고, 대학병원 감정신청 결과, 감정의는 “골수 이형성증후군 질환 자체의 혈액응고 이상 가능성과 골수 이형성증후군 치료 과정에서 골수 자극을 위한 약물 사용으로 혈액응고 이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며, 골수 이형성증후군이라는 기존 질환과 치료 과정에서 사용한 약물로 인해 양측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자연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돼 발병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임”이라고 회신했다. 이에 승소를 낙관했지만, 1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학병원 감정의 이외에 다른 모든 의사들은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었다.

업무상재해 인정 여부를 가리는 행정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근거는 법원이 지정한 감정기관의 감정 결과다. 이를 법원이 스스로 배척하는 판결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항소심인 부산고법 판결은 달랐다.

2. 대상 판결 요지

부산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원고측은 골수 이형성증후군 치료를 위해 사용된 약제인 옥시메톨론(oxymetholone) 투약으로 인해 혈액응고 이상이 초래돼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유발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감정인에게 사실조회 신청을 했다. 감정인은 외국의 의학논문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관련성이 있다고 회신했다. 다음은 대상판결의 요지다.

업무상재해로 인한 상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료과오가 개입하거나 약제나 치료방법의 부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상병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이 또한 업무상재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 하고, 위와 같은 의료과오나 약제 내지 치료방법의 부작용과 새로운 상병의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유무를 따질 때에도 앞서 본 바와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대법원 2003. 5. 30. 선고 2002두13055 판결 등 참조).

골수 이형성증후군 질환 자체의 혈액응고 이상 가능성과 골수 이형성증후군 치료 과정에서 골수 자극을 위한 약물 사용으로 혈액응고 이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원고의 골수 이형성증후군 치료를 위해 사용된 약물인 옥시메톨론은 골수 이형성증후군 치료 과정에서 골수 자극을 위해 사용된 약물에 해당한다.

공단이 이 사건 불승인처분의 근거로 삼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는 옥시메톨론이 뼈의 무혈성 괴사를 일으킨다는 보고가 없음을 전제로 한 것일 뿐 골수 이형성증후군 질환 자체의 혈액응고 이상 가능성과 골수 자극에 의한 혈액응고 이상 가능성에 관한 연구 검토 내용은 없다.

따라서 원고의 양측 고관절 무혈성 괴사는 공단이 요양급여 승인을 한 골수 이형성증후군으로 인해 발생했거나 그 치료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다.

이에 대해 공단은 종전 판결에서 원고의 골수 이형성증후군과 무혈성 괴사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부존재한다는 판단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원고는 종전 판결에서 공사현장에서의 작업과 양측 고관절 무혈성 괴사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판단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나 위 소송에서 골수 이형성증후군과 무혈성 괴사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부존재한다는 판단을 받은 사실은 인정되지 않으므로 공단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3. 대상판결 의의

① 업무상재해 패소 확정판결이 난 이후에도, 상병의 증상이 지속되는 한 소멸시효는 완성되지 않으므로 산재 요양신청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② 페인트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벤젠 등의 유기용제에 노출되면 골수 이형성증후군이 초래될 수 있다. 상당한 기간의 잠복기를 거칠 수 있으므로 골수 이형성증후군 판정을 받으면 자신의 직업력과 관련시켜 봐야 한다.

③ 골수 이형성증후군의 치료 과정에서 사용된 약물로 인해 혈액응고에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혈액응고 이상으로 인해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발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증상은 페인트 취급업무를 중단하고 퇴직한 8년 이후에도 발병할 수 있다.

④ 법원이 지정한 감정의의 의견은 허위 감정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법원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0다93790 판결1)).

<각주>
1)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0다93790 판결. 감정인의 감정 결과는 그 감정방법 등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의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해야 한다(대법원 1997. 2. 11. 선고 96다1733 판결, 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4다70420·70437 판결, 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4다70420·70437 판결, 대법원 2009. 7. 9 선고 2006다6760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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