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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식민잔재 청산과 ILO 핵심협약 비준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오늘 친일로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 색깔론’을 식민잔재라며 청산을 말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면서 해방 후 친일부역자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와 같이 국론을 분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집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변인들과 의원들, 그 추종자들이 쏟아 내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오늘 친일이냐 아니냐가 이 나라를 가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인터넷 언론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읽어 보라. 건국을 둘러싸고 친일 청산을 두고서 대립하던 해방 직후의 어느 하루에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고 착각할 지경이다. 그래서 나도 식민잔재를 생각해 봤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에 관해 친일식민잔재를 생각해 봤다.

2.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 관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하게 될 것이라고 누구도 믿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촛불대선에서 한 ILO 핵심협약 비준 공약을 이행하겠다며 경사노위 논의와 합의를 추진해 왔던 것이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 경사노위였다. 그 비준에 사용자측이 찬성할 리 없으니, 애초 경사노위에서의 합의를 통해 국회의 관련법 개정을 거쳐 추진하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의 추진방안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었다. 기껏해야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의 논의와 합의 정도로 안을 만들어 국회에 넘기고 국회에 법 개정을 촉구해 비준을 추진하는 방안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마저도 사용자 자본에 편드는 공익위원들의 반대로 합의에 이를지 의문일 테고, 그렇다면 경사노위 공익위원 다수안을 마련해 국회에 넘기는 것이겠다. 경사노위가 출범해 구성될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니 경사노위 합의를 통해서 ILO 핵심협약 비준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공약 이행을 추진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무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무지한 것이 아니라면, 그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추진하는 것이라면 기만이거나 뭔가 다른 셈법이 있는 게다.

3. 비준하겠다고 공약한 ILO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단체교섭에 관한 협약 87호와 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29호와 105호를 말한다. 노동자가 노조 등으로 단결해서 활동하는 걸 자유로 보장해야 한다는 협약, 그야말로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협약인 것이다. 결사의 자유(21조), 단결권·노동 3권 등 노동기본권(33조), 그리고 강제노동 금지 등을 인간과 국민의 기본권으로 대한민국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니, 당연히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에게 보장돼야 하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노동자들은 그것을 자유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터일까. 바로 자본주의가 이식됐던 일제식민지 조선에서, 즉 일제강점기에서부터였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노동관계 통제 입법들만 적용됐고, 공장법 등 노동보호법과 노동조합법 등 단결활동에 관한 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정치범처벌법(1919년)·치안유지법(1924년)·정치범보호관찰령(1936년)·예비검속법(1941년) 등을 통해 노동조합활동 등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자유로 보장받지 못했다. 일제 권력에 의한 노동에 대한 탄압을 통해 일본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자본 축적이 이뤄졌다. 일본 노동자의 절반을 밑도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통해 가혹한 노동착취가 행해졌고, 이를 위해 노동자들이 단결해 활동하는 것을 불법과 범죄로 규정해 탄압하는 단결금지법리가 지배했다. 물론 식민지 조선의 노동운동은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해서 투쟁했다. 하지만 일제하에서 노동자의 자유는 쟁취되지 못했다. 해방 후 과제로 남게 됐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친일식민잔재 청산을 말한다면, 노동자들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자유가 자신에게 보장돼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찾을 수가 없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70여년이건만, 이 나라 노동법은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활동하는 걸 원칙적으로 불법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1945년 해방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노동자 단결의 자유를 불법과 범죄로 탄압하는 단결금지법리를 극복하지 않고는 노동법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말할 수 없다. 임금·근로시간·재해 등에 관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으로 노동법의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요구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노동법의 시작이다. 자본주의 초기에 단결금지법제(예를 들어 1790년대 프랑스의 르 샤플리에법, 1800년 전후 영국의 단결금지법)를 두고 우리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노동법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단결금지법제의 극복은 1870년대 영국·프랑스 그리고 독일에서 노동자가 단결해 활동하는 것을 국가가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 법제가 마련되면서 이뤄졌다. 당시 단결금지법은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활동하는 걸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는 주체·목적·절차 등을 규제해 그걸 모두 준수하는 경우는 허용하는 것이었는데, 바로 그걸 폐지하고서 노동법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 뒤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까지 면하는 데까지 노동법 역사는 전개돼 오고 있는 것이나, 아직은 일정한 경우에는 정당성 운운하며 불법으로 규정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태에 있다. 이것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 선진 나라에서의 노동법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노동법 교과서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마치 우리 노동법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해설하기에 앞서 서두에 이와 같은 노동법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으니, 그걸 읽고 있으면 이 나라의 노동법이 단결금지법리를 극복한 것인 양 읽게 된다. 60여년을 그래 왔다. 1953년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이 제정되고서 지금까지 노동법 교과서는 이걸 분명히 가려 해설하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 이 나라에서 우리는 단결금지법리는 극복했지만 다만 다른 나라보다 좀 더 제한을 받고 있는 거라고, 그 제한을 완화하기 위해 ILO 협약 비준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알 뿐이다. 그런데 아니다. 우리는 단결금지법리를 극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노동법의 역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노동자가 단결해 활동하는 자유는 노동자가 노조 등으로 단결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으로 행동할 자유를 말한다. 그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자유라면, 그건 국민으로서 보장되는 결사의 자유(헌법 21조)로 보장되는 것이다.

5. 나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까지 우리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 쟁취를 위해 단결해 교섭하고 파업 등 행동하는 걸 자유로 보장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고서 1953년 대한민국이 제정한 노동쟁의조정법은 공무원 아닌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는 안전보호시설의 정상적 유지운영의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해 행정관청의 중지명령을 위반하거나 냉각기간을 위반한 경우, 조합원 과반수 의결 없이 노조 명의로 쟁의시에 6월 이하 징역 등으로 처벌했다. 이 제정법도 위 노동법 역사로 보자면, 단결금지법리를 완전히 극복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는 1953년 3월8일에 제정된 것이다. 당시는 한국전쟁 시기였다. 전시체제에서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니 그나마 변명할 말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 대한민국에서 노동법 역사는 이를 개정할 때마다 노동자의 자유에 관한 제한과 금지를 추가하고, 그 규제의 강도는 강화돼 왔다. 그래서 가장 많은 사항을 제한·금지하고, 가장 중하게 규제하는 것이 바로 현행 노조법이다. 이런 노동법의 역사로 보자면 이 나라는 거꾸로 흘러왔다. 식민지 조선 노동자의 자유를 불법과 범죄로 규제하던 일제 권력이 대한민국 권력으로 바뀌었지만, 노동자의 자유는 여전히 불법과 범죄로 규정되고 있다. 그동안 할 만큼 했다.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의 축적에 노동자의 자유를 억압할 만큼 충분히 했다. 더는 억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오랫동안 단결금지법리 아래서 자유를 빼앗겨 왔다. 학교 교가 작사·작곡을 친일인사가 한 것이라고 분노하며 친일잔재 청산을 외치는 나라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의 억압 기제인 단결금지법제를 노동법에서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노동자는 식민잔재라는 분노도 없이 그저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에 관한 논의를 지켜보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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