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욱 변호사(법무법인 송경)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2월19일 이른바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경사노위 노사정 합의문’을 추인하는 형식으로 의결했다. 경사노위는 위 합의를 1호 합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은 그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안했다(의안번호 2019069 근로기준법 개정안). 그런데 경사노위가 ‘합의’라는 것을 할 수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 1조는 근로자·사용자 등 경제·사회 주체 및 정부가 신뢰와 협조를 바탕으로 고용노동 정책 및 이와 관련된 경제·사회 정책 등을 ‘협의’하고, 대통령의 자문 요청에 응하기 위해 경사노위를 설치한다고 목적을 밝히고 있다. 경사노위법 2조는 근로자·사용자 등 경제·사회 주체 및 정부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독립해 자율적으로 성실하게 ‘협의’에 임해야 하며, 그 결과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참여주체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 동법 7조는 경사노위가 고용노동정책,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관행의 개선에 관한 사항 등을 ‘협의’한다고 규정하고 경사노위는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며, 위 의결시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 사용자를 대표하는 위원 및 정부를 대표하는 위원 각 2분의 1 이상 출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경사노위법은 경사노위가 협의 및 의결 기구임을 명시하고 있을 뿐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한다거나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협의와 의결의 효과는 경사노위법 18조와 19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8조에서 ‘협의 결과’는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하고, ‘의결사항’은 관계 행정기관에 통보하고 그 이행을 촉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19조에서 근로자·사용자 등 경제·사회 주체 및 정부는 위원회 의결사항을 정책에 반영하고 성실히 이행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사노위법에 따르면 협의는 대통령 보고 사항이고, 의결은 관계 행정기관에 이행을 촉구하고 노사정에 성실이행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사항이다. 적어도 경사노위 ‘본위원회’에서 의결이 있어야 관계 행정기관을 구속하고, 노사정에 대한 성실이행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라는 것은 경사노위에서의 합의도 아니고, 어떠한 논의를 거쳐 어떠한 이유로 합의가 이뤄졌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합의를 했다는 다섯 명 중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용근 한국경총 부회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명은 노동시간제도개선위 위원도 아니었고, 위 합의에는 여성·청년·비정규직 등 미조직 취약계층을 대표하는 노동자위원들이 참여하지도 못했다.

2월18일 8차 노동시간제도개선위에서 한 공익위원은 “위원회에 참여하는 책임 있는 당사자들에게 권한을 위임한 후 추후 위원들이 형식적으로 추인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차별화하기 위해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며 만들어진 경사노위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노사정 합의를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결국 경사노위 여성·청년·비정규직 3인 대표는 깊은 고민 끝에 이른바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이 진정한 사회적 대화라고 할 수 없다며 경사노위 의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경사노위는 위 합의를 의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국회는 경사노위 ‘합의’를 존중한다며 2022년 12월31일까지 주 52시간 제도의 단계적 정착이 마무리되는 때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한다는 근로기준법 부칙(3조)을 무시한 채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 입법안을 내놓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협약이나 권고를 의결하기 위해 노사정이 모여 그 협약이나 권고의 자구 하나하나를 가지고 수일에 걸쳐 공개된 장소에서 토론하고 논의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협의 및 의결을 강조하는 것도 ILO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노사정이 모여 치열하게 협의하고 의결하라는 뜻이다.

경사노위 1호 합의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노사정 합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에서 경사노위가 ‘합의’를 할 수 있다고 정하지 않은 이상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경사노위는 제대로 된 협의나 의결도 아닌 이른바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지금이라도 폐기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