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한국금융안전지부
한국금융안전에서 계약직(무기계약직 포함)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한 달 기본급은 174만5천150원이다. 정확히 올해 최저임금과 같다. 정규직 중 연차가 가장 낮은(6급 4호봉) 노동자 통상임금(기본급+직책수당) 157만3천800원보다 17만1천350원이 많다. 직책수당(8만원)을 빼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기본급 격차가 25만원가량으로 커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산입범위를 조정한 최저임금법 때문이다. 회사는 2015년 무렵 교통비와 중식비를 기본급에 포함시켜 최저임금을 맞췄고 올해 시행된 최저임금법에 따라 연간 500%인 상여금을 월할해 최저임금 부족분을 메웠다.

시간외근무수당도 통상임금이 높은 비정규직(3만3천818원)이 정규직(3만497원)보다 3천원 이상 많다. 회사는 하루 2.7시간 연장근로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고 수당을 지급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기본급 역전 현상은 현금수송업계의 뿌리 깊은 저임금 구조 때문이다. 업계 노동자들은 "원청인 은행이 매년 수조원의 수익을 거두고도 최저임금 인상분만큼을 단가에 반영하지 않아 발생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13년차 기본급 108만원

24일 <매일노동뉴스>가 국내의 대표 현금수송업체인 금융안전과 브링스코리아 임금명세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한국금융안전 입사 20년차(5급 10호봉)의 올해 통상임금은 173만6천800원이다. 기본급에 직책수당(8만원)이 더해진 금액이다. 신입에서 출발해 무려 15단계의 호봉을 적용받는 정규직 기본급이 비정규직보다 적다. 지난해까지는 기본급을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올리더니 올해 최저임금법 시행 뒤에는 그러지 않았다.

장용호 금융노조 금융안전지부 수석부위원장은 "무기계약직에게는 200%의 상여금이 지급되는데 비정규직 기본급이 더 많고 이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시간외근무수당도 높아 입사 20년차 정규직과 임금수준이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고 산입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최저임금 수준의 정규직 조합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금융안전은 업계 1위 업체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시장점유율 2위인 브링스코리아의 저임금 구조는 더욱 심각하다. 브링스코리아는 호송원들을 상대로 자동승진 제도를 운영한다. 사원(2년) 선임(2년) 주임(4년) 계장(4년)을 거치면 대리직급이 부여된다. 브링스코리아의 ‘직급별 초임표’를 보면 사원의 기본급은 100만7천원이다. 입사 12년이 넘어야 달 수 있는 대리 기본급(108만4천원)과 별 차이가 없다. 브링스코리아는 최저임금 부족분을 월할 상여금과 통상임금 조정수당으로 채운다. 1년 미만 사원의 올해 월급은 둘을 더해 174만5천150원이다. 대리 월급(210만2천150원)과 큰 차이가 없다.

조승원 브링스코리아노조 위원장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제대로 된 임금교섭도 없이 회사가 법 위반을 회피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분만을 급여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현금수송 단가 20년째 제자리

노동계는 노조가 없는 발렉스 같은 동종 업계 노동자 사정은 열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의 현금과 귀중품을 운송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이처럼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유가 뭘까. 노동계는 회사의 지급여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하고 낮은 가격을 써낸 곳과 계약을 맺는 은행에 본질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최저가입찰제다.

조승원 위원장은 "과거 은행 지점과 지점 사이의 현금수송단가가 8만원이었다면 지금은 4만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동훈 금융안전지부 위원장은 "금융안전의 경우 기본 수송단가가 20년 동안 변동이 없다"며 "은행이 최소한 최저임금 인상률만큼을 단가 인상에 반영하면 현금수송 노동자들이 임금역전 현상과 같은 고충에 시달리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안전지부와 브링스코리아노조는 지난해 4월 현금수송노조협의회를 만들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경쟁업체지만 원청 금융사를 상대로 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노조협의회는 은행과 정부에 △최저가입찰제 폐지 △최저임금 인상률 단가 반영 △적정단가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안전 관계자는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됐는데 그만큼 단가가 오르지 않아 지난해 영업이익이 마이너스가 됐고 직원들 사이 기본급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며 “적어도 최저임금 인상분이 단가에 반영돼야 경영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지상주의 금융사, 공공기관 입찰제 따라야"

금융안전 노사는 지난해 임금교섭에서 당시 예상됐던 임금역전 현상을 두고 마찰을 빚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도 노사 갈등의 원인이 은행의 최저가낙찰제로 봤다. 공문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분을 단가에 반영할 것을 권고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의 경우 제한경쟁으로 기술평가가 7이면 가격평가가 3이기에 엄밀히 말해 최저가낙찰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수송단가 인상이 있었고 다른 은행들도 가격 요소를 고려해 업체를 선정하기에 개별 은행이 관행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안전은 시중은행들이 전액 출자해 만든 회사다. 우리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IBK기업은행이 지금도 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은행들이 과거 자신들이 하던 업무를 외주화한 것 중 가장 대표적인 일이 현금수송업무인데, 은행의 수익지상주의에 노동자들이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은행원들의 임금이 높은 이유는 금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인데 현금수송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고착화할 경우 사고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금융이 공공성을 띤 규제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은행들이 가격 외 요소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공공기관 입찰제를 따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금융노조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이달 말 실태조사에 착수한다. 현금수송업계 노동자들의 임금실태 조사가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노조는 “조사를 통해 은행의 현금수송업을 대리하는 하청업체 임금실태를 파악하고 적정단가를 보장하는 방안을 찾겠다”며 “이를 산별교섭 틀에서 의제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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