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단식 열흘째, 재춘씨가 웃는다. 친구 혹은 동지 또는 투쟁 선배 행란씨가 찾아왔는데 좁은 천막이 시끌벅적하다. 진작에 온 줄을 알았다고. 굶는 사람 앞에서 죽는 얘길 할 수도 없어 행란씨는 사는 얘기를 죽 풀어낸다. 그게 다 먹는 얘기다. 녹색병원 앞 분식집 순대부터 또 어디 맛나던 요리까지. 기어이 그 앞에 빵 두 봉지를 풀고 먹는다. 쫄깃한 게 이 빵 참 맛있다며 권한다. 놀려먹을 심산인데, 그걸 모를 리 없는 재춘씨가 한바탕 웃고 만다. 자기도 그랬다고. 내가 당할 줄은 미처 몰랐단다. 언젠가 기타 공장 라인 책임자 맡아 한창 일할 때에도 잘릴 줄은 생각지 못했다. 13년, 이렇게까지 긴 싸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족들과 밥 한 끼 먹는 게 꿈이라고 재춘씨는 농성 천막에 새겼다. 홀로 감잎차를 마셨다. 스마트폰을, 또 시집을 뒤적거렸다. 대뜸 송경동이꺼냐고 행란씨가 물어보니 보란 듯 시집을 툭 던지고 툭탁툭탁 말씨름 시작이다. 나도 시집 많다, 더 유명한 사람이다 뭐다 하는 만담이 길다. 아 정말 나랑 안 맞는다고 재춘씨가 소리쳤다. 웃고 만다. 얼마 전 문화제 무대에 올라 읊었다던 시가 윤동주 작 무얼 먹고 사나였다. 거기에 노동자 등쳐 먹고 사는 자들 얘기를 덧붙였다는데, 일기장에 적었다던 그 내용이 꼬불꼬불 암호 같아 온전히 복기할 순 없었다. 사장과 재벌, 또 구조 따위가 알아볼 만큼 선명했다. 기타 만들던 시절 얘기라면 술술 재춘씨 기억이 또한 또렸했다. 니들이 나보다 기타를 잘 아느냐고, 그 앞 본사 직원들과도 말다툼한단다. 우리에게도 명예가 있다고 농성장 또 한 벽에 새겨 걸었다. 기대어 앉은 자리 옆으로 장미 한 송이 시들어 간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 기타 회사 앞 하얀색 천막이 봄바람에 운다. 흰머리 재춘씨가 흰옷 입고 말라 간다. 재춘, 다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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