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건설노조
"갑상선암에도 걸렸고, 이명증도 심합니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걱정이 많네요."

전기원 노동자 김진태(53·가명)씨는 광주·전남지역에서 2만2천900볼트의 살아 있는 활선을 자르는 배전설비 보수업무를 한다. 올해로 30년째다.

김씨는 21일 <매일노동뉴스> 통화에서 최근 전기원 노동자 백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졌다고 했다. 그 역시 몇년 전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귓속에서 "지잉~" 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지러운 이명 증세도 생겼다. 7년 전부터 광주전남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유명한 이비인후과·신경과를 다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김씨는 "병원에선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지만 전자파 때문 아니겠냐"며 "고압전류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내 몸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착수도 못한 '활선작업자 건강관리 방안' 연구용역

최근 고압전류를 만지다 백혈병에 걸린 전기원 노동자가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으면서 전기원 노동자의 건강관리와 작업환경 개선 문제가 재점화하고 있다. 건설노조와 수년 전부터 광주지역 전기원 노동자 건강상담을 진행한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는 최근 들어 건강이나 산재신청 문의가 증가했다. 전자파가 직업병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밝혀진 만큼 정부와 한국전력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다.

정부도 고압전류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건강관리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움직임은 더디다. 지난해 백혈병으로 숨진 전기원 노동자가 최초로 산재인정을 받은 뒤 고용노동부는 "전자파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건강진단으로 유해성을 확인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연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안전보건공단은 '활선작업 근로자의 건강관리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전자기파를 특수건강진단 유해인자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검토하는 중요한 연구용역이었다. 그런데 입찰참가자격 불충분이나 입찰지원자가 아예 없는 등의 이유로 7차례나 유찰되면서 연구에 착수하지도 못했다. 공단은 최근 재공고를 냈다. 노동부 관계자는 "연구가 빨리 진행돼야 특수건강진단 유해인자에 전자기파를 포함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진행상황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원청인 한전은 간접활선공법의 현장 안착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전기를 흐르게 둔 채 교체할 노후전선을 잘라 내고 새로운 전선을 연결하는 직접활선공법으로 감전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한전은 "2021년까지 직접활선공법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한전은 전기공사협회와 건설노조와 함께 '간접활선 적기정착 협의체'를 꾸렸다.

"정부·한전, 전기원 산업안전보건 대책 세워야"

전문가들은 원청인 한전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16년 전기원 노동자 1천여명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했던 이철갑 조선대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직접활선공법 폐지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년 넘게 장기간 전자기파에 노출된 전기원들에게 언제 어떤 질환이 나타날지 모른다"며 "전기원들의 건강상태를 장기적으로 추적하고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전이 협력업체·노조와 함께 전기원 노동자들의 직업성 질환을 조사하고 논의할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간접활선 현장 정착과 함께 노동자들의 건강문제 전반을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전기가 1초라도 끊어지면 큰일인 나라에서 전기원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문제는 소홀한 것 같다"며 "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한전과 정부가 적극 개입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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