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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장인의 단식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에 우리는 분노했다. 재판거래는 대부분 정권 안위나 기업 이익을 위해 억울하게 고통을 당한 이들의 호소를 ‘법’의 이름으로 단죄하거나 무력화한 것이기에 더 끔찍한 범죄다.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로 희생된 이들은 국가범죄 피해자들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고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관련자들이 모두 처벌받는다고 해서 정의가 회복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부는 사법부 재판거래가 밝혀진 순간부터 재판거래 피해자들이 피해를 회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피해자들이 지금도 고통을 지속하고 있다면 이미 정의가 아니다.

재판거래 피해자 중에는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가 있다. 머리가 허옇게 센 그를 사람들은 ‘기타 장인’이라고 말한다. 기타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계절에 따라 기타 음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야기하는 노동자다. 해고되기 전까지는 오로지 기타밖에 모르고 살았다는 그를 기타 장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가 일했던 콜텍은 국내 1위, 세계 3위 악기회사였고 100억원대의 수익을 냈다. 그러나 2007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공장을 넘기고 문을 닫았다. 250명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됐다. 창문을 만들면 딴생각을 한다는 박영호 사장 지시에 따라 창문도 없는 공장에서 일한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기타를 사랑했던, 기타 장인 임재춘 노동자는 그 이후로는 기타를 만들지 못했다.

콜텍 노동자들은 13년째 싸우고 있다. 13년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아이가 성인이 되는 만큼의 시간이다. 그 긴 시간을 버티며 싸우는 이유는, 회사는 돈을 벌었지만 노동자는 해고당하는 불합리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헤아리기 어려운 농성 날짜와 삭발·단식, 오체투지·고공농성…. 그야말로 안 해 본 투쟁이 없다고 할 만큼 노동자들은 오랜 투쟁을 했다. 기타를 만들었지만 기타를 칠 줄 몰랐던 노동자들은 그사이에 밴드를 결성해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임재춘 노동자는 ‘카혼’이라는 타악기를 다룬다. 거친 손이 카혼을 두들길 때 13년 세월을 견딘 노동자의 울림이 느껴진다. 가끔 박자를 놓치기도 하지만.

희망이 보인 때도 있었다. 2009년 11월 서울고법은 "회사 전체의 경영사정을 종합 검토해 볼 때 정리해고 당시 경영상 큰 어려움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잘못된 정리해고라고 판결했다. 회사는 판결을 이행하지 않았다. 재판은 오래 지속됐다. 2012년 상고심과 2014년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에 대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회사가 잘나가도, 미래에 경영위기가 올지 모르니 지금 정리해고를 해도 된다는 이 판결을 어떻게 정상적인 판결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2018년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이 대법원 판결이 "박근혜 국정운영 뒷받침을 위해 재판거래를 한 사례"로 확인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가 없었더라면 ‘가장 긴 투쟁’이라는 콜텍 투쟁의 수식어는 없었을 것이다. 그 재판거래가 아니었다면 한국 부자순위 120위이면서도 노동자를 가차 없이 버린 박영호 사장이 지금처럼 큰소리를 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뒤집힌 현실은 하나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재판거래가 밝혀진 이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정부는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속절없이 날들은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임재춘 노동자는 정년을 앞두고 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잘못된 것을 되돌리고 삶을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끝장투쟁'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기타 장인 임재춘 노동자는 본사 앞에서 지난 12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이 글이 나갈 무렵이면 단식 10일이 넘었을 것이다. 13년간의 싸움을 끝내고 정년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타를 만들고 싶은 절실한 소망을 이루고자 곡기를 끊은 임재춘 노동자의 모습에 숙연해진다. 기업은 공장을 없애 노동자들을 내보내고 숙련의 가치를 없앴다. 정부는 노동유연화라는 말로 그것을 포장했다. 대법원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해고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오늘도 노동자는 명품기타를 만드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 기업과 정부와 법원이 파괴한 이 노동자의 삶을 정부는 어떻게 돌려놓을 것인가. 시민들은 이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아니 이 괴물 같은 사회에서 사람으로서 살고자 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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