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전류를 만지다 백혈병에 걸린 전기원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전기원 노동자의 전자파에 의한 백혈병이 직업병으로 인정된 것은 지난해 2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노동계는 “한국전력과 정부가 전기원 노동자 작업환경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만2천900볼트 고압전선과 1미터 이내에서 일해”

17일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2004년 4월 백혈병으로 진단받은 임아무개(62)씨의 질환이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최근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공단 광주지역본부는 임씨에게 요양·보험급여통지서를 지난 12일 통지했다. 임씨는 한국전력 협력업체 소속으로 광주·전남지역에서 30년간 배전설비 보수업무를 했다. 전류가 흐르는 전선(활선)을 절연장갑만 끼고 다루는 작업을 했다.

임씨는 2004년 4월 삼성서울병원에서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9월 공단 광주지역본부에 산재요양신청을 했다. 아직 공단에서 판정서를 받지는 못했다.

임씨는 산재신청 당시 제출한 재해 발생 경위서에서 “전기원 업무는 1988년부터, 활선작업은 1995년부터 했다”며 “23년 동안 2만2천900볼트의 고압전선과 1미터 이내의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일하면서 초저주파·전기장 등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린 것 같다”고 호소했다. 그는 “16미터 높이에서 고압전류가 흐르는 상태에서 작업하다 보니 항상 전기가 흘러 몸에 있는 털이 꼿꼿하게 일어서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가족 중 백혈병이나 암으로 진단받은 사람도 없다”고 밝혔다.

“전기원 노동자 건강권 보호 위해 실태조사해야”

임씨 산재인정에는 지난해 백혈병 전기원 노동자 산재사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월 서울질병판정위는 2015년 5월 백혈병으로 숨진 장아무개(사망 당시 54세)씨 질병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전자파가 전기원 노동자의 백혈병에 영향을 준다는 국내 첫 결정이었다. 장씨는 임씨와 마찬가지로 한국전력 협력업체 소속으로 순천지역에서 26년간 배전설비 보수업무를 했다.

두 번의 판정은 또 다른 전기원 노동자들의 산재인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광주근로자센터에 따르면 현재 공단 질병판정위는 2016년 6월 말 전기원 노동자 18명이 낸 산재보상신청을 심사하고 있다. 산재보상을 신청한 이들은 뇌종양(2명)·비강암(1명)·갑상선암(3명)·대장암(1명)·식도암(1명)·뇌경색(2명)·뇌출혈(1명)·무릎관절염(1명)·흉추골절(1명) 등을 앓고 있다. 이들은 활선작업을 하다 전자파에 노출돼 질병이 발병했다고 주장했다.

전기원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문길주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은 “전기원 노동자들이 두 번이나 산재를 인정받음으로써 전기원 노동자의 백혈병이 전자파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문 사무국장은 “전기원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전력은 작업환경·건강관리 실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도 특수건강검진 대상에 전기원 노동자를 포함시키는 등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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