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 논란을 일으킨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를 취소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개설 신고나 허가를 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의료법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제주도의 소송 패소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뒤흔들 판도라 상자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을 들었다.

 

▲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

녹지국제병원, 공공병원 전환만이 완전한 해결책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

녹지국제병원은 개원 허가 후 3개월 안에 개원하지 못했다. 제주도는 개원 허가 취소를 위한 청문절차를 밟고 있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원 허가가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개원을 허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고 당연한 결과다.

사실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원 허가 자체가 잘못이었다. 사업시행자가 병원사업 경험도 없고, 국내자본이 우회투자를 하고 있는 녹지국제병원은 개원 허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게다가 녹지국제병원은 1천200억원이 넘는 가압류에 걸려 있었다. 사업시행자가 병원사업 포기의사를 밝히며 인수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개원을 허가할 상황이 아닌데도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개원을 허가하는 바람에 엄청난 사회적 논란이 빚어졌다. 소송전이 줄을 잇고 있다.

녹지국제병원 사태는 기어이 우리나라에 영리병원 물꼬를 트려는 자본의 집요한 요구, 이에 부화뇌동한 정부와 제주도의 부실행정, 개발이익을 노리고 뛰어든 중국자본의 탐욕이 빚어낸 합작품임이 드러났다. 자칫 우리나라 영리병원 문호가 열리는 대참사로 이어질 뻔했으나 다행히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둘러싼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1호 영리병원 개원을 막을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무수한 소송전은 녹지국제병원 해결책이 아니라 지루한 논란과 분쟁에 빠뜨리는 늪일 뿐이며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확대하는 위험천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녹지국제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완전한 해결책이다.

 

▲ 김혜림 의료노련 정책국장

영리병원 사태가 남긴 숙제
김혜림 의료노련 정책국장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원 허가 취소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5일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받은 후 개원 기한인 지난 4일까지 개원을 하지 못했다. 3개월 동안 녹지국제병원은 단 한 번도 개원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허가 취소 절차 돌입은 당연한 결과다.

제주에서 일어난 영리병원 개원 시도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청문회를 앞두고 있지만 개원할 명분도 없었던 녹지국제병원 허가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 승인과 심의 허가 과정에서 우회투자 의혹에도 개원을 강행했던 것에 대해서도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계획서 비공개와 녹지그룹의 병원인수 요청, 건설대금 체불로 인한 가압류 등 수많은 의혹은 아직 밝혀진 게 없다. 더 이상 지체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청문절차를 조속히 시행해 녹지국제병원 허가를 당장 취소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의료노련은 영리병원을 막아 내기 위해 제주지역신문 반대성명과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조직했다.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제주도에 항의했다. 우려되는 점은 국내 영리병원 설립 시도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병원을 돈벌이 목적으로 삼으려는 영리병원 시도 자체를 막는 입법이 필요하다. 국민 건강권을 지켜 내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야 한다.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이후 건강보험이 강화돼 병원재정은 공적으로 보장됐으나 공립병원은 거의 지어지지 않았다. 그사이 재벌들이 병원을 짓거나(현대·삼성), 사립병원들이 커지고 또 영리형 병원네트워크가 됐다. 사립병원이 90%가 되고 이제 그들은 ‘비영리법인’이라는 ‘규제’가 거추장스럽다.

병원자본은 ‘정상자본’이 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서 외국영리병원이라는 이름으로, 그 외에도 병원경영지원회사·병원영리자회사·기술지주회사 등 갖가지 우회적 영리병원 허용이 시도된다. 지난해 한국경총의 9개 규제완화 요구 중 첫 번째가 영리병원 허용이다. 투자와 이윤배분, 즉 병원 돈벌이를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다. 국민과 노동자들이 키워 놨더니 이제 그들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이야기다.

미국 드라마 <CSI>의 그리섬 반장은 “연쇄살인범들은 잡힐 때까지 결코 살인을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이 늘어 사립병원을 압도하고, 사립병원들을 공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병원자본을 잡아야 한다.

 

양경호 한국노총 제주지역본부 사무처장

영리병원 강행한 원희룡 도지사 책임 크다
양경호 한국노총 제주지역본부 사무처장

박근혜 정부 당시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사실 제주도민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영리병원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리병원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내용을 잘 몰라서 처음에는 입장이 모호했지만 실상이 하나둘 드러나고 문제점과 허점이 밝혀지면서 제주도민들의 반대여론이 하늘을 찔렀다. 제주도민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건강보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 영리병원은 허가 취소를 위한 청문절차에 들어갔다. 녹지그룹이 소송을 통해 대응하겠지만 법의 심판을 받을 일만 남았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제주도민 의사를 무시하고 영리병원 개원 허가를 강행한 원희룡 도지사에게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업자 말만 듣고 일방적으로 대변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제주도민과 국민 의사는 무시돼 버렸다. 제주도는 이번 일을 거울 삼아야 한다. 도민 뜻에 거스르는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또다시 영리병원 카드를 꺼내 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김현석 국민건강보험노조 수석부위원장

영리병원 도입 관망했던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김현석 국민건강보험노조 수석부위원장

제주도민의 민주적 숙의 결과를 짓밟고 무모하게 개설 허가된 국내 첫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으로 인해 야기된 엄청난 사회적 비용에 대한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다시는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을 위협하는 무모한 시험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전부터 발생한 일련의 의혹들은 일반 상식을 뛰어넘었다. 실체가 드러날 때마다 국민은 경악했다. 제주도는 국내자본의 불법 우회투자 의혹이 제기됐고, 건설회사들에게 공사대금을 미지급해 가압류를 당한 상태에서 병원운영에 대한 의지조차 불분명한 데도 허가를 내줬다.

노동·시민·사회단체 투쟁으로 영리병원 도입은 일단 멈췄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제주도와 정부는 녹지국제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영리병원 도입을 관망했던 문재인 정부도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녹지병원 도입저지 투쟁으로 영리병원 허용과 의료민영화 정책의 문제점이 사회 쟁점으로 부각되고,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 확대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한 점은 성과다. 영리병원 저지를 위해 모은 힘으로 향후를 준비해야 한다.

부의 정도에 따라 의료·생명을 차별하게끔 만드는 영리형 의료체계를 구축하려는 야만적인 음모·시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의료영리화 시도가 우리 사회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노조는 조직의 명운을 걸고 지속적으로 투쟁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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