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사회적 대화, 직접 참여해 보니 참 어렵다. 이런 감정노동이 없다. 솔직히 힘겹고 고달프다. 욕먹는 걸 감내하며 들어간 만큼 책임감도 무거워져 잘해 보려 애썼지만, 현재로는 앞이 잘 안 보인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여성·청년·비정규직 계층별 대표 세 사람의 본위원회 불참으로 의결이 두 차례 유보되면서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경사노위가 어렵사리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예단과 아전인수식 해석, 그리고 남 탓 공방보다는 어떻게 사회적 대화기구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인지 논의를 집중해야 할 때다. 여전히 진영논리가 득세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계급·계층 간 사회적 대화가 헤쳐 나가야 할 가시밭길은 곤고하고 만만찮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사회적 대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사회적 대화 진전 없이는 한국 사회 불평등 양극화 해소가 더욱 요원해지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 상황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각 주체들이 적극 참여해 제 몫을 하면서 경사노위 정상화에 힘써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숙의민주주의가 근간이다. 사회적 대화 ‘기구’의 성과에 집착하거나 서두르면 안 된다.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여러 정치적 고려야 불가피하겠지만, 본말이 전도돼선 곤란하다.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만 해도 그렇다. 경사노위로 넘어온 시작부터 합의안이 도출된 마지막까지 문제가 많았다. 경사노위가 대통령소속 자문기구로서 온전한 역할을 하려면 독자적인 위상 정립이 중요하다.

그런데 출발부터 모양새를 구겼다. 당정청협의체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를 결정한 이후 경사노위로 그 짐이 떠넘겨지면서 더욱 고약해졌다. 결국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안에 담긴 일부 전향적인 내용마저 쟁점 토론을 통해 검증될 기회조차 없이 총체적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사회적 대화와 경사노위에 대한 정부의 도구적 인식이 지금 어려움을 초래한 가장 큰 이유다. 가장 먼저 잘못된 도구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

배제되고 소외된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대변도 관건이다. 세 계층별 대표가 받은 충격이 가장 큰 것도 탄력근로제 합의 과정에서 협의나 의견수렴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합의주체들의 고심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인데도 계층별 대표들이 언론을 통해 합의 결과를 접한 건 납득할 수 없었다. 이번 참에 반드시 합리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가장 경계하는 건 사회적 대화 무용론과 경사노위 해체론이다. 둘 다 과도하고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 상대방의 존재와 처지, 입장부터 인정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대화는 불가능하고 효능도 없다. 더구나 민감하고 광범위한 의제를 다루는 사회적 대화기구에선 더욱 그렇다. 모 아니면 도식 기대나 섣부른 예단이 앞서면 사회적 대화는 시작부터 그르치게 된다.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공동의 해결과제로 인식한다면 사회적 대화의 경로와 방식, 의제 등 실질적인 논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야 마땅하다. 사회적 대화나 경사노위를 아예 부정해 버리는 건 한국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무책임하다는 방증밖에 안 된다.

경사노위 계층별 대표들은 두 번의 불참으로 인한 여파를 우려하면서도, 미조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일념으로 경사노위에 들어간 만큼 이번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처음 가는 길인 만큼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만 할 일은 온 힘을 다해 하나씩 해 나가며 제 몫을 할 것이다.

이 정도로 주저앉기엔 노조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대다수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현실이 너무 심각하다. 이 진통을 이겨 내고 사회적 대화와 경사노위를 정상화해야 일터에서 차별받고 고통받으며 남몰래 눈물 흘리고 있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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