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승재 금속노조 법률원 송무차장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유한대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청년이 행복한 나라, 무한한 가능성의 날개를 펼쳐 훨훨 날 수 있는 나라, 때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상처받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뒷받침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로부터 이틀 전, 대통령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골자로 하는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 사실상 연속으로 주당 64시간 근무를 허용하고, 사용자의 가산임금 지급의무를 면제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에게 국가의 뒷받침을 믿고 불안보다 더 큰 희망과 설렘을 담아 힘차게 사회로 나아가기 바란다는 덕담을 남겼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와 과로사 위협에 직면한 청년노동자에게 그 덕담이 진정성 있게 들릴 리 만무하다. 경사노위를 위시한 정부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시도가 청년노동자가 아닌 오직 기업만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정부와 기업은 애써 언급을 회피하고 있지만 노동시장 주변부에 위치한 다수 청년노동자는 이미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공짜 야근’ 강요의 가장 심각한 피해 당사자로서 매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일별 근로시간 상한이 명백하게 존재함에도, 하루 12시간씩 5일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루 20시간씩 3일 동안 하도록 강요받는 현장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지 않은 경우에도 ‘버티지 못하면 일터에서 쫓겨난다’는 청년의 불안감을 이용해 포괄임금제라는 명목하에 부당한 초과근무를 강요하며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사업장도 태반이다.

최근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사업장에 법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겠다는 점에 있다. 법률이 정하는 노동시간 상한선을 변칙적으로 늘리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규탄받아 마땅하지만, ‘법보다 사장 주먹이 더 가깝다’는 대부분 일터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과 그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지 않겠다는 제도적 선언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황이 심각한데도 정부는 지난해 발표하겠다고 선언한 포괄임금제 오남용 대책을 아직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는 마치 군사작전을 치르듯 속전속결로 진행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누군가를 금방 해치우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정부가 신속하게 해치우고자 하는 타깃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청년노동자에게 큰 벽이 될 것이고, 그 벽에 부딪힌 청년노동자는 죽음의 소용돌이에 더 빠른 속도로 빨려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청년에게 건넨 덕담은 장시간 노동으로 죽어 가고 있는 청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발언이며, 모순 그 자체라고밖에는 달리 칭할 방법이 없다.

지난겨울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自然死)하자’라는 노래가 청년들의 공감 속에 인기를 끈 바 있다. ‘퇴사 아니면 과로사’라는 청년노동자들의 절규는 이제 ‘과로사’ 아닌 ‘자연사’에 대한 절박함으로 바뀌고 있다. 청년의 꿈이 자연사인 사회를 마주 보고 대통령이 도전과 혁신을 운운하니, 이보다 가당치 않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간절히, 그러나 단호하게 요구한다. 노동법을 거꾸로 돌려 청년을 과로사로 내몰지 말라. 제발 우리, 자연사하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