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8일 나는 첫 목차를 이렇게 달았다. 그날 저녁에 방송통신대에서 열리는 노동판례모임에서 발표할 판례비평이었다. 고용의제 노동자 오지환에 대한 현대차 징계해고사건 판결에 관해서였다. 지난달 말 갑작스럽게 요청받고서 발표하게 된 것인데, 막상 글을 쓰자니 많은 일들이 떠오르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 바람에 졸지에 판례연구모임 발제문에 어울리지 않게 글머리를 시작하게 됐다. 사실 내가 발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오지환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가 지난 1월 퇴직하면서 발표하게 됐다. 사건은 잘 알고 있었다. 노동위원회 구제신청과 그에 대한 행정소송이 진행될 때 사무실 담당 노무사와 변호사로부터 수시로 보고받고 이러저런 조언도 했었다.

2. “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심문회의가 끝나고 정승균 노무사로부터 패소를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답장은 보냈지만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건 당사자인 오지환은, 부당해고라고 한 충남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한 중앙노동위 판정 결과를 듣던 심경을 이렇게 썼다(2017년 8월24일자 한겨레신문). 당시 지방노동위 판정에 따라 그는 “14년 만에 복직해 현장 노동에 막 적응한 터였는데 동료들에게 또다시 해고될 위기에 놓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중노위 판정에 이랬던 그가 그 뒤 행정법원, 그리고 서울고등법원에서 부당해고가 아니라며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은 정당하다는 판결 선고를 들었으니 그 마음을 감히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3. 15년도 더 지났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최초로 비정규직노조인 사내하청노조가 조직된 것이 2003년쯤이었고, 그로부터 울산공장을 비롯해서 다른 사업장들에서도 비정규직노조의 조직과 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사용자는 원·하청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노조 활동을 탄압했다. 사용자가 사내하청노조 간부인 비정규 노동자의 아킬레스건을 잘랐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내가 크게 놀라지 않았을 정도로 당시 비정규직노조 투쟁에 사용자 자본은 무자비했다. 글에서 이 당시 상황에 관해 오지환은 이렇게 설명했다. “하청노동자에게는 지옥 같은 공장이었다.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쥐꼬리만 한 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에 신음했다. 급기야 2003년 월차를 쓰려던 어느 하청노동자가 하청업체 관리자에게 폭행당하고 식칼로 아킬레스건이 잘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현대자동차 아산·울산·전주공장에 차례로 비정규직노조가 결성됐다. 이어 2004년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진정을 통해 현대차 불법파견의 실상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당시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법률원장이던 나는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불법파업과 불법집회라며 업무방해, 그리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위반으로 체포와 구속·수배되는 비정규직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을 변호하고, 파업과 공장출입을 둘러싼 각종 가처분 사건과 투쟁하다 해고된 비정규 노동자의 해고소송 등을 대리해야 했다.

4. 현대차에서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은 불법과 범죄로 몰렸다. 이 나라 법(원)은 투쟁하다 해고된 비정규직을 부당해고로 구제해 주지 않았다. 하청업체 사용자를 상대로 구제신청을 했지만 인정해 주지 않았고, 원청 현대차를 상대로 실제 사용자라며 구제신청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뜨겁던 2003~2005년의 비정규직 투쟁이 지나간 뒤에, 비정규직을 위해 응답해 주지 않는 법(원)에 우리는 원청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로 현대차가 실제 사용자라고 주장하고, 그게 아니라도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의 사용사업주라고 주장해서 오지환을 비롯해서 아산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 노동자 7명은 현대차 근로자라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것은 2005년 12월16일이었다. 당시 소장을 작성하면서 강동우 변호사와 나는 해고무효확인으로 할 것인가, 근로자지위확인으로 할 것인가 그 청구취지가 고민이 돼 논의한 끝에 근로자지위확인을 구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이 인정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은 데다 인지대 등 비용 부담과 소송지연을 염려해 임금상당액의 손해배상 청구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결과를 보고서 하기로 하고 이를 제외했다. (이 청구의 소송을 제기해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5. 현대차에서 나아가 이 나라 대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이 파견근로라고 인정돼 원청의 근로자라고 법원이 인정한 것은 바로 이 사건에서였다. 2007년 6월 서울중앙지법은 파견근로라며 옛 파견법에 따라 2년을 초과해 근무한 오지환 등은 현대차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있기 전까지 이 나라 법원은 한 차례도 현대차 사내하청근로가 파견근로라고 인정한 적이 없었다.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 투쟁으로 해고된 최병승이 현대차에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노동위는 물론 법원도 파견근로라고 판단하지 않아 대법원에 상고했던 것인데, 오지환 등에 관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나오자 대법원에 그 판결문을 참고자료로 제출하며 최병승도 파견근로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은 최병승 사건을 파견근로로 인정해 부당해고라며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원심(서울고법)에 환송하는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8두4367 판결). 그 유명한 대법원의 최병승 사건 판결이다. 현대차는 오지환이 현대차 근로자 지위가 인정된다는 서울지법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는데, 2010년 11월12일 서울고법은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서울고법 판결에서 판시한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 법리는 그 뒤 현대차 비정규직 1천940명 집단소송 사건에 관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을 비롯해 많이 인용됐다. 오지환은 마침내 2015년 2월26일 대법원에서 파견근로에 해당한다며 현대차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현대차의 상고를 기각하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고서 9년2개월여 만이었다. 노동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로서 오지환 사건은 이렇게 이 나라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법적투쟁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현대차로부터 다시 해고를 당한 것이니 오지환은 위 글에 이렇게 쓰고 있다. “법원은 나에 대해 이미 2002년 8월부터 정규직이라고 판결했지만 회사는 자신들이 직접고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므로 최병승·오지환에게는 단체협약을 적용할 수 없다며, 신입사원과 동일한 입사 절차를 강요했다.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다 결국 지난해 12월 해고당했다.” 바로 노동판례모임에서 발표할 법원 판결은 이 오지환이 다시 당한 해고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6. 해고 사유는 이랬다. 오지환 등 4명이 현대차 근로자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자, 현대차는 사용자로서 고용이행 안내문을 보내 각종 서류 제출과 배치대기 명령을 하면서 출근시 서류 제출은 아산인사팀(본관 3층)에 제출하도록 통보했는데, 오지환은 이를 거부하고 무단결근했다는 것이다. 이 무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싸고 노사는 대립하고 있었다. 불법파견이라는 법원판결이 나오자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밖에 없게 됐던 것인데, 사용자 현대차가 추진한 것은 비정규 노동자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고서 신규채용에 응하는 방식이었다. 법적으로는 이미 현대차 근로자이거나(고용의제), 근로자로 해 줘야 함에도(고용의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정규직 고용을 무기로 소송 취하를 압박하면서 노동자로서 법적 권리를 포기하도록 하는 행태였으니, 현대차에서 10여년 비정규직 투쟁을 한 오지환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바로 이 때문에 신규채용시 하는 것처럼 서류 제출을 명령하고,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수행했던 작업에 배치하는 인사명령이 아닌 배치 대기를 명령하는 현대차의 행위를 오지환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맞섰다. 고백하건대 나는 소심했다. 기껏해야 법적인 걱정을 하는 변호사였다. 일단 들어가서 싸우자고, 아직 근로자지위확인 판결을 받지 않은 최병승과는 다를 수 있다고, 이미 현대차 근로자인데 그 명령에 따르지 않는 걸 문제 삼을 수 있다고 자문했으니 말이다. 혹시나 하는 염려로 했던 것인데 오지환은 다시 해고되고 말았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충남지노위에서 부당해고로 인정받았으나, 중앙노동위와 행정법원, 그리고 고등법원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다. 현재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돼 있다. 담당 변호사가 퇴직하면서 내가 사건을 맡게 돼 오지환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상고이유서를 작성해야 한다. 뭐라 해도 오지환에 대한 현대차의 해고는 부당하다. 오지환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상고이유서에서 분명히 말할 것이다. 사용사업주로서 현대차가 사용했던 대로 오지환을 사용해야 했다. 2000년 8월부터 사내하청 소속으로 파견법을 위반해 사용할 때에도, 그 파견법에 따라 2년 초과해 사용함으로써 고용의제돼 자신의 근로자로 2002년 8월부터 사용할 때에도 현대차는 서류 제출 없이, 배치대기 없이 하던 대로 오지환을 의장공장에서 계속 사용했다. 그러니 했던 그대로 사용자 현대차는 오지환을 사용하면 됐다. 그러면 오지환은 어떠한 명령 거부도 없이 12년 전에 근무했던 아산공장 의장공장에서 일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신규채용인 양 서류 제출을 요구하고 일할 부서를 찾기 위한 배치대기를 명령했기 때문에 오지환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그러니 여전히 현대차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다시 한 번 나는 대법원에서 주장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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