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3.21 목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연재칼럼 김승호의 노동세상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 원인, 전망과 교훈
▲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 발표도 없이 서둘러 끝났다. 그 모습을 영어로 “abruptly”라고 표현했다던가? 어쨌든 좋지 않은 모습으로 헤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모습에 놀랐고 안타까워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예속과 분단의 역사가 반세기를 넘어 한 세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 분단과 예속으로 인해 남과 북이 모두 정상적인 국가와 사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 불순한 정략적 목적을 가지고 북미정상회담이 잘되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던 극우 파시스트 집단을 빼놓고 누가 놀라고 안타까워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만 그렇게 놀라고 안타까워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또다시 평화와 통일이 임박했다는 희망고문을 반복할 수도 없다. 고 문익환 목사는 1990년 평양에 다녀와서 감옥을 산 후 “통일은 이미 다 됐다”고 단언했다. 이 단언에 깃들어 있는 그분의 민족사랑 정신은 고귀하지만 그 현실 인식은 주관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삼 정권이 “어떤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한 것을 보고 그 정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한 예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조문하는 것도 막았다. 자신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도 성찰할 점이 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통일 희망을 크게 북돋았지만 그 시기 국가정보원에서는 ‘계면공략’이라는 이름의 흡수통일 공작이 시도됐다. 이것이 햇볕정책의 두 얼굴이고 진면목이다. 고인이 된 그분들을 폄훼하기 위해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찰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자고 주장하고자 예를 든 것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는지 아닌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게 시작이다. 북쪽에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고 미국쪽에서도 그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서로의 요구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됐다고 한다. 그건 성과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억지다. 결렬이 돼도, 더 나아가 파국이 돼도 성과적인 측면은 있을 수 있다. 적어도 북측에서는 빅딜은 아니라도 스몰딜 정도는 이뤄질 거라 기대하고 그 회담을 추진하고 참석했는데, 뭇 사람들에게 그런 기대를 갖도록 하면서 회담이 열렸는데, 아무런 합의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헤어졌는데, 그게 결렬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결렬인가. 집권당에서 결렬이 아니고 중단이라고, 대화를 더 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으니 그들의 인지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전에 엄연히 “교섭이나 회의 등이 서로 의견이 달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깨짐”이라고 돼 있는데 말이다.

그다음으로 회담이 왜 결렬됐는지 살펴보자.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좋은 합의문을 만들고 헤어졌다.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자는 합의를 담았다. 하지만 싱가포르 합의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6·15 선언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실현할 의지와 역량에 비해 희망적·당위적인 내용이 많다. 6·15 선언이 그렇듯이 싱가포르 선언도 북측이 주도해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트럼프가 동의했다고 해서 트럼프나 미국이 그 합의를 문자 그대로 이행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 9·11 테러 이후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자 더 이상 평화와 통일을 진전시킬 수 없었다.

극우 반동 정치인인 트럼프를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한다면 너무나 낙관적이다. 트럼프는 그렇게 할 의향도 능력도 없다. 그는 네오콘 볼턴을 자신의 안보보좌관으로 삼고 있고, 그를 앞세워 중남미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를 사주하고 군사적 옵션을 추진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의 역관계하에서 싱가포르에서 합의된 것은 애당초 실현될 수 없는 희망선언이다. 미국에서 반제국주의 세력이 집권하거나 남한에서 민족해방운동이 혁명적으로 고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반도 전쟁이 실질적으로 종전되고 평화협정 체결이 성사될 수는 없다. 최대치가 휴전상태하에서의 평화선언 또는 종전선언일 것이다.

북미관계는 어떻게 될까. 세계 자본주의가 또 한 번의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미 제국주의의 유일패권이 심하게 동요하는 극히 유동적 상황이므로 세부적인 지점을 예측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세계 자본주의가 파국으로 나아간다고 해서, 미 제국주의 패권이 쇠퇴한다고 해서, 북미관계에서 미국이 양보하는 태도로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 반대로 된다고 해서 미국이 양보적 태도로 나온다는 보장은 더욱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 세력의 주체적 지향과 실천이 사태전개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각 주체의 지향과 실천은 자신이 처한 처지와 이해관계에 의해 구속될 수밖에 없다.

남한의 노동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주체성을 가지고 북미관계의 미래, 그와 연동한 남북관계와 남미관계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친미적 자유주의 정권이 좇는 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노동계급에게나 전 민족적으로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결렬이 아니고 중단이라니,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계급적 입장과 관점이다. 민족적 과제도 초계급적으로가 아니라 계급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노동계급이 추구해야 할 통일은 철저하게 반제·반미 민족해방을 이루는 통일이어야 하며, 동시에 담대하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통일이어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승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