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봄기운 스멀스멀 오르는데, 놀이터와 동네 길에서 재잘재잘 떠들며 뛰는 아이들을 볼 수 없어 온 세상이 적막했다. 새 학기 맞은 어린이집에선 나가 놀지 못해 답답한 아이들이 요란스레 뛰다 혼이 났다. 공기청정기가 돌고 돌았다. 아이 마스크를 깜박한 아빠는 집을 오가느라 회사에 지각했다. 끼어들던 차와 양보란 없는 차량이 다투느라 경적이 길에 요란했다. 치열한 싸움 중에도 사람들은 창문을 내리지 않았다. 한강 다리 위에서 본 국회가 흐릿했다. 초국가적 미세먼지 대책을 주문하는 야당 정치인의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높았다. 공습이며 재난 따위 무서운 말이 흔했다. 정부 탓하느라 말이 빨랐고, 활기찼다. 참 많은 것들을 스마트폰과 앉은 자리 컴퓨터로 처리하는 초연결 시대인데, 초미세먼지 자욱한 길에 나설 일은 여전했다. 마스크가 준비물 1순위에 올랐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은 까만색 마스크를 써 옷과 맞췄고, 공장 일하는 사람들은 작업용 방진마스크를 챙겼다. 한겨울 추위 물러간 집회 자리에서 보따리 맨 상인이 접는 방석과 커피 따위 철 지난 것 파느라 목이 쉰다. 어묵이며 닭꼬치 팔던 노점은 내내 한산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연일 높았다. 쉬이 풀릴 문제도 아니라고 누구나가 말했다. 답답한 일 많은 사람들 목소리가 먼지 자욱한 길에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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