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1991년 12월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이래로 ILO가 한국에 가장 빈번하게 권고한 것이 노동 3권을 침해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의 개정이다. ILO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한국 노동현실에 관해 가장 경악하는 점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국가가 법률로 규제한다는 사실이다. 군인과 경찰만을 예외로 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노동조합을 결성·가입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결사의 자유 원칙에 비춰 볼 때 한국 노동법은 단결금지법에 가깝다. 공무원과 교원은 일정 범위 사람들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인정하지 않는다.

고용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은 1919년 ILO 헌장과 1944년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이후 ILO 헌장 부속서가 됨)부터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 이르기까지 국제인권법의 기초를 형성했다. 노동조합을 결성·가입할 권리는 기본적 인권의 하나이기에, 법률로 노조가입 범위와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고, 설립신고제도를 통해 사실상 노조에 대한 허가제를 운영하는 한국은 인권침해 국가일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노동현실에 관해 납득하지 못하는 또 한 가지는 파업권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폭력·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평화로운 노무제공 거부에 대해 형사처벌이 이뤄지고, 천문학적 액수의 보복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 ILO와 유엔 인권위원회 등은 십수년째 "인권침해를 시정하라"고 권고해 왔다.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은 최소한 위의 두 가지 인권침해를 합법화시켜 주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노조법 개정안에는 이러한 최소한의 개선조치도 포함돼 있지 않다. 오히려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의 엄격화 등 재계 요구를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재계 요구가 국제인권기준과 헌법에 얼마나 위배되는 것인지, 하나만 예를 들어 보자.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가 입법화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도 생산시설 등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쟁의행위를 하거나 전면적 직장점거를 하면 불법파업이 된다.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하면 사업장 출입이 사실상 금지된다. 여기에 더해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가 추가되면, 파업에 돌입하는 순간 일터를 떠나야 하고, 사업장에서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피케팅을 하거나 집회를 하면 모두 불법파업이 된다. 결국 평화로운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되고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지금보다 만연할 것이다.

ILO 협약 비준을 명분으로 우리 노동현실을 현행보다 악화시키는 법 개악을 시도하는 이 역설적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볼 것인가?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1997년 발표한 국가의 인권 보장의무 이행에 관한 기준(마스트리흐트 가이드라인)에서는 국가가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가 보장되는 수준을 후퇴시키는 역행적 조치를 채택하는 것”을 “작위에 의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ILO 역시 ILO 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권에 관한 국내 법·제도를 후퇴시키는 행위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경사노위를 앞장세워서 우리 사회 노동기본권을 한층 더 후퇴시키는 인권침해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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