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이달 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2차 본위원회를 앞두고 노동계뿐만 아니라 법률가단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사정 합의가 추진되면서다. 단결권에 관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에서 '재계 숙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유성기업·발레오전장 같은 사업장에서 자행된 갖가지 부당노동행위를 지켜봤던 법률가들로서는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한국경총의 5가지 요구안(파업시 대체근로 허용·사용자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 삭제·직장점거 금지·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보완)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악하는 분위기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8개 법률단체 소속 100여명의 변호사·노무사들이 지난달 27일부터 경사노위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에 들어간 배경이다. 농성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신인수(47·사진) 민주노총 법률원장이다. 신 원장은 "21세기 노동자들을 19세기 단결 금지, 노동조합 혐오법률로 묶어 놓고 이걸 얼마만큼 풀어 줄지 재벌과 협상해 오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21세기에 맞추기 어려우면 적어도 20세기 수준으로라도 맞춰야 하고, 그 최소한이 ILO 핵심협약 비준"이라며 "ILO 핵심협약 비준에 그 어떤 것도 끼워팔기 할 수 없다"고 말했다. 3일 오전 농성장에서 단식 5일차에 접어든 신인수 원장을 만났다.

- 경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조 단결권이 폭넓게 인정되면, 사용자 방어권도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인데.

"대체근로 문제부터 보자.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의하더라도 일정한 경우 대체근로가 허용된다. 필수공익사업장에서는 파업 참가자의 100분의 50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규채용이나 하도급을 허용한다. 더군다나 ILO는 합법파업에 대체인력 투입을 파업권 손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미 사용자 방어권은 충분히 보장돼 있다.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직장폐쇄를 할 수 있고, 인사권과 징계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여기에 무슨 방어권을 더 보장하라는 건가."

- 대체인원 전원을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괜찮지 않냐는 시각도 있다.


"정규직으로 대체인력을 채용했다고 치자. 대체인력으로 고용된 정규직과 파업을 끝내고 돌아온 정규직, 한 자리에 두 명이 있게 된다. 사용자가 두 사람 모두 고용할까? 파업 참여자에게 고용상 불이익을 줄 게 불 보듯 뻔하다."

- 부당노동행위 처벌규정 삭제 요구는 어떤가.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된 사용자가 얼마나 되나.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은 사실상 규범력이 매우 약화된 조항이라서 문제다.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규범력을 강화해야 한다. 경총의 형사처벌 조항 삭제 주장의 요지는 결국 '나 범죄 저지를 건데, 처벌하지 마'다. 이런 주장을 대놓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신 원장은 직장점거 금지와 단협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보완 주장 모두 "ILO 권고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ILO 기준적용 전문가위원회는 "사용자를 배제하지 않은 평화로운 직장점거는 적법한 쟁의행위 수단"이라고 해석했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330차 보고서에서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9개월로 설정한 나라에 대해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또 판정례집에서 우리나라처럼 파업 조건을 '재적인원 과반수 찬성'으로 정하는 것은 파업권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으로 봤다.

그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왜 국가나 사용자가 간섭하나. 뒤집어서 사용자의 이사회 결의사항에 대해 동일사안 재투표 제한, 투표기간·횟수 제한, 유효기간을 제한하자고 하면 경영권 침해라고 주장할 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 경사노위나 공익위원들은 경총 요구안 중 국제규범에 반하지 않는 내용을 중심으로 절충점을 찾자는 입장인데.

"자꾸 국제규범을 얘기하는데, 그러면 논쟁을 끝내고 ILO에 직접 묻자는 거다. 지난해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에서 ILO를 불러 뭐가 진짜 국제규범에 맞는지 들어 보자고 제안했는데 끝까지 안 부르더라. 그래 놓고 국제규범을 거론하는 게 말이 되나."

신 원장을 비롯한 법률가들은 5일 청와대 앞으로 간다. '탄력근로제 밀실합의 철회·ILO 핵심협약 신속 비준·노동법 개악 반대'를 주제로 받은 법률가 서명지를 노동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노동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답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