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복지공단

혈액암의 일종인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도장공에게 발병한 고관절 괴혈성 괴사도 업무상재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항암치료 과정에서 사용하는 약품이 혈소판에 영향을 줘 고관절 무혈성 괴사로 이어졌다고 봤다. 고관절 무혈성 괴사는 엉덩이뼈에 혈액공급이 안 돼 썩어 들어가는 병이다.

27일 법무법인 민심에 따르면 부산고등법원 2행정부(재판장 박종훈)는 지난 13일 "업무상재해로 인한 상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약제나 치료방법의 부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병이 발생했더라도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며 "골수이형성증후군 치료제에 사용된 약품 옥시메톨론이 혈액 응고 이상에 영향을 미쳐 고관절 괴혈성 괴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1988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해 페인트부스에서 도장공으로 일했던 A씨는 30세가 되던 91년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고 이듬해 퇴직했다. 이후 제관공으로 전직한 A씨는 1999년 9월 부산골프고등학교 공사현장에서 철구조물 작업을 하다가 엉덩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2000년 5월 병원에서 양측 고관절 무혈성 괴사라는 진단을 받았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신청을 했지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법정소송으로 이어졌지만 2015년 대법원에서도 산재 불승인 판결이 내려졌다.

그런데 A씨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준 사건이 있었다. 삼성전자 직업병 인정투쟁이다. 2015년 23세 나이에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사망한 조아무개씨의 유족이 산재신청을 한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접한 그는 다시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공단은 2017년 3월 A씨의 골수이형성증후군을 산재로 인정했다. 하지만 고관절 무혈성 괴사에 대해서는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두 질병 사이에 관련성이 부족하다는 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 결과와 2015년 대법원 판결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부산고법은 "당시 판결은 부산골프고 공사현장에서의 작업과 고관절 무혈성 괴사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진 것이지 골수이형성증후군 간 상당인과관계를 살핀 것이 아니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변영철 변호사(법무법인 민심)는 "삼성전자 직업병 사건이 산재 소송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도장작업 노동자의 경우 10~20년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개인질환이 아닌 업무상재해를 먼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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