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제도개선을 논의하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재계에 가로막혔다. 재계가 노동기본권 보장을 강화하는 내용의 합의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정부 “합의안 마련해야”
재계 “공익위원안 먼저 나와야”


26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실무협상은 별다른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났다. 실무회의에 앞서 열린 운영위원회에서 "부대표급 협상을 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재계가 반대했다.

노사정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실무회의나 부대표급 협상을 포함해 추가 일정을 잡지 못했다.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은 27일 각각 정기대의원대회와 정기총회를 한다. 노사정 대화가 소강상태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재계는 협상을 고위급으로 격상하는 것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과 관련해 노사 양측의 쟁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고위급회담이 열리면 탄력근로제 합의 때처럼 논의가 급진전할 수도 있다.

탄력근로제와 달리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제도개선은 노동계 숙원 사안이다. 재계 입장에서는 노사정 합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대한 시간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대놓고 반대한다. 노사정 합의 없이 공익위원 의견 정도만 나온 채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로 넘어가면 재계로서는 나쁠 게 없다. 경총 관계자는 “노사정 대화가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라는 회의체에서 진행돼 왔으니 공익위원 의견을 내놓는 것을 포함해 절차를 제대로 끝내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와 정부는 노사정 합의 도출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합의에 실패하면 국회 법 통과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음달 7일 문재인 대통령 참석이 예상되는 경사노위 본위원회 전에 타결하는 것이 좋다.

노동계와 정부는 공익위원들이 안을 발표하는 것도 반대하고 있다.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의 경우 단일한 공익위원안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노동계와 정부는 재계 추천 공익위원안에 대해 부정적이다. 재계는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나온 재계 추천 공익위원 의견에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계 요구를 받아들이면 반대급부로 노동계가 요구하는 쟁의행위 형사처벌 금지를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게다가 파업시 대체근로를 허용하면 노동자 단체행동권을 심각하게 제약해 위헌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노동부 내부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협상은 노사가 주고받을 게 별로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쟁점 뚜렷해 결단만 남았다?

협상 소강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사노위는 다음달 7일 본위원회 안건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안만 상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한국노총이 본위원회 개최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 내용을 경사노위 본위원회와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를 바라는 재계가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의제는 탄력근로제보다 범위가 넓고 복잡하다. 지금까지 정리된 쟁점이 분명해 오히려 탄력근로제보다 합의가 쉬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노사정의 선택과 결단만 남아 있다는 뜻이다.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관계자는 “더 이상 실무협상은 의미가 없다”며 “노사정 고위급 결단이 필요하고, 엄밀히 말하면 재계 결단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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