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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와 배신탄력적 근로시간제 노사정 합의문을 읽으며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해 노사정이 합의했다는 소식에 나는 2015년 9월15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한 노사정합의를 떠올렸다. 당시 나는 ‘배신의 합의’라는 제목으로 매일노동뉴스에 칼럼을 기고하며 노사정의 합의를 비판했었다. 3년5개월여의 날들이 지나갔다. 합의를 몰아붙이며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던 정권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한 정부로 바뀌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 같건만, 헤아려 보니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2015년 9월에는 민주노총은 참여를 거부한 상태에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동자측 대표로 참여해 사용자와 정부측 대표들과 합의했었다. 이번에도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노총이 참여해 노사정 합의를 했다. 나머지 합의 주체 ‘사’와 ‘정’은 참석하는 자들만 달라졌을 뿐이다. 그 사이에 사회적 합의기구는 노사정위가 경사노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진 것 같지만 이렇게 헤아려 보니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오늘 다시 나는 노사정 합의문을 읽고 있다.

2. 경사노위는 19일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제도개선 관련 최종 합의 도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간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제도 도입시 요건 완화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오남용 방지를 위한 임금보전 방안 등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면서, 특히 합의 막판에 노사정 부대표급 이상까지 참여하는 “고위급 협의 틀까지 가동해서, 합의를 위한 배전의 노력을 다한 결과 노사정 주체가 각각의 이해관계를 조금씩 내려놓는 대승적 결단을 통해 결국 합의에 이르게 됐다”며 “이번 합의는 경사노위의 공식적 출범 이후 첫 합의이자,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대한 노사 간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했던 만큼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결단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경사노위는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철수 노동시간제도개선위 위원장은 “노사가 국민 모두의 염원인 합의를 위해 의미 있는 결단을 내려 준 데 대해 매우 감사하다”며 “이번 합의의 정신을 존중해 국회가 입법 과정에 잘 반영해 주기를 바란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사회적 대화가 사회적 갈등과 시대적 과제를 해소하는 우리 사회의 ‘발전공식’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번 노사정 합의에 대해 경사노위와 그 소속 노동시간제도개선위는 출범 첫 합의이자 희망의 결단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한편 이 노사정 합의가 있은 다음 날인 20일 문재인 대통령은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 그 자체가 귀중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그럼 이처럼 대단하게 평가받는 합의문을 읽어 보자. 도대체 어떠한 내용으로 합의했다는 것인지, 노동자권리로 살펴보자.

3.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경사노위 노사정 합의문’에서 노사정은 “주 최대 52시간 제도의 현장 안착을 위해”서 1항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1주간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사용자는 근로자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정근로시간을 정하고(50조1항),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 한도로 이를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53조). 이러한 근로기준법의 법정근로시간제와 연장근로에 관해서는 엉터리 입법이라는 것에 관해서 이 칼럼난을 통해서도 수없이 떠들어 왔다. 법정근로시간제는 근로계약·단체협약 등 노사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한 근로시간 한도를 정하는 제도고 바로 노동제다. 그럼에도 노사 당사자 간 합의로 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법제(53조)는 부당하다. 따라서 그 당사자 간 합의는 그야말로 근로계약·단체협약 등으로 미리 근로시간을 정할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는 것으로 해석·집행해야 한다고 나는 반복해서 말해 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에서도, 문재인 정부에서도 법정근로시간제(근로기준법 50조)는 철저히 무시됐다. 주 52시간제 도입에 관한 입법 추진을 몰아붙였고, 1주일은 일요일 등 휴일을 포함해서 7일이라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했다. 이로 인해 졸지에 이러한 법 개정이 있기 전까지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1주일이 일요일 등 휴일을 제외한 나머지 5일(혹은 6일)인 것이 돼 버렸다. 노동법 개정 역사에서 가장 황당한 입법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하려다 못했던 그 황당한 입법을 문재인 정부에서 해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주 52시간제로 노동시간단축을 해냈노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해 왔다. 그 입법은 사용자 부담 해소를 위해 그 예외가 인정되는 특례업종, 사업장 규모별로 시행 유예를 허용하고 있다. 그 시행을 앞두고는 고용노동부는 사용자들에게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무시간제를 적극 활용할 것을 안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사용자 부담 경감 등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이번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노사정 합의는 이를 위한 것이었다. 이는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가 “주 52시간 근무제의 연착륙 과정에서 재계가 어려움을 호소해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로부터 개선방안 마련을 요청받아 발족했다”고 경사노위가 이번 보도자료에서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해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통한 2주 이내의 단위기간으로 한 것과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으로 한 것을 허용한다(제51조). 그런데 그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한다”고 노사정 합의를 한 것이다.

합의문에서는 2항에서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으로 우려되는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시간을 의무화함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다”고 하면서, 3항에서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 도입한다”고 정하고 있다.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최대 6개월의 단위기간으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노사정 합의를 한 것이다. 현행 3개월을 6개월까지 단위기간을 확대한 것인데,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권리로 볼 때 그만큼 뒤로 퇴행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사전에 정하는데 애로가 있음으로 고려해 주별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최소 2주 전에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노동자에게 통보하면 되도록 하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는데(합의문 3항 후문), 현행법이 이를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시에 정하도록 한 것을(근로기준법 51조2항3호) 사용자를 위해 후퇴시킨 것이 아닐 수 없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추진하면서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등은 그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대신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임금 손실(연장근로수당 등)을 보전하는 것으로 하면 노사정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노사정 합의에 자신감을 드러냈었다. 이와 관련해 합의문에는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자는 임금 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이를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다(합의문 4항).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따른 연장근로수당 등 임금손실분에 관한 사용자의 지급의무를 규정하지 않고, 단지 사용자로 하여금 임금보전 방안을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떠한 내용으로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신고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저 사용자에게 그 방안을 마련해 신고하도록 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하면 그 신고와 과태료 부과도 없도록 정하고 있다(합의문 4항 단서). 현행 근로기준법은 2주 이내의 단위기간,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때조차 사용자는 “기존 임금수준이 낮아지지 않도록 임금보전 방안을 강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51조4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현재 연장근로수당 등 노동자의 임금손실을 초래하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지경인데, 신고의무로 임금손실이 보전될 것이라는 기대하는가.

이상 이번 노사정 합의문을 읽어 보면 “주 52시간 근무제의 연착륙 과정에서 재계가 어려움을 호소”해 이를 들어 주기 위한 합의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경사노위가 출범한 뒤 첫 노사정 합의에 대해 위원회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대승적 결단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번 합의대로 국회가 입법하게 되면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한 노동자권리의 삭감을 안겨 줄 결단이라고 말해야겠다. 그러니 이런 합의 추진을 자랑하며 권력이 추진하는 사회적 대화가 우리 사회의 발전 공식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우리 노동자에게 희망이 없다.

4. 2015년 9월15일 노사정 합의에서, “1주일은 7일”로 정해 “주당 근로시간은 52시간(기준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으로” 하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은 노사합의가 있으면 6개월까지 확대하기로 정했다. 이러한 박근혜 정권에서의 노사정 합의는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시간단축 방안으로 추진되고, 이번에 문재인 정부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에 그대로 담겼다.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권리로 보자면, 도대체가 달라진 것이 없다.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진 것처럼 말하는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집권여당으로 추진하던 노동입법을 오늘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다는 것만 달라진 채 변함이 없다. 2015년 9월 권력은 노동자권리 삭감을 협박하면서 노사정 합의를 종용했다. 그래서 그 합의에 참여했던 노동자측 대표라는 한국노총 위원장 등은 노동자권리가 더 삭감되는 걸 막기 위한 차선의 합의였다고 배신을 변명했었다. 그런데 오늘도 같은 변명의 말이 들린다. 분명히 권력은 박근혜 정권에서 촛불대선을 통해 문재인 정부로 달라졌건만 노동자권리 앞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니 오늘 다시 나는 합의문을 읽으며 노사정 합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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