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용균이 엄마는 종종 웃었고, 자주 울었다. 잠시 눈 감을 때면 어김없이 눈물 흘렀다. 깊은숨 뒤로 먼 데 바라보는 눈에는 주렁주렁 천장 등이 맺혔다. 보냈다지만 어찌 보낼 수가 있느냐고. 엄마는 그저 입술을 꼭 깨문다. 숱한 김용균이 아직 살아 줄줄이 죽음으로 향하는 컨베이어벨트를 탄다. 내가 김용균이라고 닮은꼴 사람들이 지난 두 달여 외쳤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언젠가 정태춘이 부른 노래 첫 소절을 구호 삼았다. 칼 쥐고 총 가진 자들을 향했던 말은 돌고 돌아 2019년의 손팻말 속에 들었다. 돈이며 효율 따위가 총칼 자리를 꿰찼다. 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고 죽었다. 앞다퉜다. 뒤따랐다. 고개 떨군 엄마가, 또 아빠가 상여를 뒤따랐다. 이름 석 자에 울던 엄마가 고개 들어 눈물 씻고 멀리 본다. 숱한 과제를 말한다. 고된 몸 잠시 기댄 서울 영등포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벽에 신세 진 사람들의 사연이 빼곡하다. 엄마는 거기 주방에 들어 그릇을 씻는다. 나갈 채비를 한다. 또 언젠가의 참사 유가족과 함께 기자 앞에 선다. 또박또박 복기한다. 눈물을 쏟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호소했다. 영정 뒤따랐던 엄마가 앞장섰다. 늦깎이 엄마는 숙제가 많다. 그날 밤, 충남 당진 큰 공장 닮은꼴 죽음을 전하는 뉴스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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