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촛불항쟁이 마련한 비정규노동 문제 개선의 호기가 결국 이대로 무산되고 마는가. 요즘 하루하루 목이 탄다. 양대 노총에 소속된 노조 조합원들은 자력으로 작은 우물이라도 파서 자신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만 보호막 구실을 해야 할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조건에서 노조 밖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내몰린 대다수 비정규 노동자들은 사막에 고립된 난민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최선의 정답은 있다. 2% 내외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면 한국 사회 불평등 양극화 문제 해소의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일터에서 약자인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만 노조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힘겹다. 학교 비정규직 조직화 등 주요 사례에서 사용자가 노조에 친화적이거나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정규직 민주노조의 지원과 연대가 있을 때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가 상당한 규모로 성과를 낸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민간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무릅쓰고 노조를 만들자고 나서긴 참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사회여론의 지지는 노조 조직화 성패를 가름하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재벌 자본의 힘의 우위가 지속되는 사회적 조건에서는 비정규 당사자 투쟁과 함께 중장기 전략에 기반한 노조 조직률 배가와 친노동 사회여론화 작업이 긴요하다.

그 경로 중 하나가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진전이다. 물론 노조 조직률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기 전까지 한계가 있겠지만, 지금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정부의 노동정책 우경화를 막고 압도적 다수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익개선을 위한 길을 열어 가는 게 급선무다.

줄곧 뜨거운 논란이 된 최저임금 문제도 결국 사회적 대화를 통해 타개해야 한다. 지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서부터 주휴수당 논란을 거쳐 올해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로 번졌다.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최저임금 문제가 이렇게 왜곡된 근본 원인도 따져 봐야 한다. 이만한 우여곡절을 겪고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개별 현안에 매몰돼 똑같은 양상으로 노사정 갈등만 확대 재생산한다면 가장 힘없는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자들만 고통을 전가받게 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주휴수당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기형적인 구조로 된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현행 임금체계 구조에선 온갖 꼼수와 편법이 횡행할 수밖에 없어 최저임금 인상 효과도 제대로 측정하기 힘들다. 노사가 모두 동의하는 기본급 중심 정상 임금체계가 확립되면 산입범위와 주휴수당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빠른 시일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위해서라도 최저임금 인상의 선순환 효과가 담보될 수 있도록 을들의 연대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 노동자와 최저임금을 주는 대표적 사용자인 영세 자영업자는 비슷한 처지의 사회적 약자다. 재벌 중심 양극화 경제구조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자영업자가 아니라 바로 과실을 독식하는 재벌대기업 집단이므로 공동피해자인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는 손을 맞잡아야 마땅하다. 문제해결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힘없는 을들 간 대립만 심화하는 결과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근본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사회적 대화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계층별 대표들이 들어와 있는 만큼 을들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여러 수준의 대책을 협의하고 사회적 합의 수준에서 내올 수도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진정한 쓸모가 바로 이런 데 있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 시비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적폐세력 활로가 돼선 안 된다. 30여년 동안 유일하게 작동한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를 살리고 중앙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제 몫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불의한 권력자를 응징하고 불평등 양극화 사회 극복을 선결과제로 제시한 촛불항쟁의 시대정신과 사회적 대화는 한 궤다. 정부부터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하는 노사정이 올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저임금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처지다. 무엇보다 힘없는 을들끼리 대립이 더 이상 격화하지 않도록 적정한 최저임금 수준을 책임 있게 결정하는 것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구조개혁 실현이 진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대 다수 이해당사자들의 절박한 생존권이 걸린 최저임금 문제에서 일정한 성과를 낸다면 사회적 대화에서도 전화위복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현재 조건에서 다른 길은 없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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