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올해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10.9% 오른 시급 8천350원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74만5천150원이다. 지난해보다 월 17만1천380원 인상됐다. 노동자 월급도 17만원 올랐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매월 지급하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산입범위 확대와 사업주들의 꼼수가 맞물리면서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내 월급은 그대로'인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성과금 깎고 수당으로 돌려막기

'현장투쟁 복원과 계급적 연대 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 주최로 20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최저임금의 역습 사례발표'가 열렸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비정규직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현대그린푸드 조리노동자, KEC 노동자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월급 명세서를 공개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하청업체인 태호코퍼레이션 노동자 A씨의 올해 1월 월급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215만1천67원이다.

지난해(213만4천17원)와 비교해 1만7천50원 올랐다. 태호코퍼레이션은 전년 대비 기본급(131만6천700원)을 동결하는 대신 생산장려수당·복지수당·보건수당·라인수당을 각각 7~67% 올렸다. 기본급을 올리면 성과금이 따라서 인상되니 기본급 대신 수당을 올린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성과금은 반으로 줄여(21만9천450원→10만9천725원) 수당 인상 효과를 없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조정으로 A씨의 지난해와 올해 월급 차액은 1만7천50원에 그쳤다.

태호코퍼레이션만 그런 게 아니다. 해마다 상여금을 삭감해 한때 600%였던 상여금을 100%만 남긴 곳, 설귀향비를 삭감한 곳, 상여금을 전액 월할지급으로 변경한 곳 등 한국지엠 1·2차 하청업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형태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성과금 삭감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기 때문에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업체가 삭감된 성과금이 반영된 새 근로계약서를 제시하면 서명을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상여금 쪼개기는 기본, 노동자 반대하면 "반대의견 들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Y&K산업·나성기업·기봉산업과 현대·기아차 공장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현대그린푸드는 올해 1월부터 격월로 100%씩 주던 600% 상여금을 매월 50%씩 쪼개 지급했다.

예전에는 사용자가 1개월을 초과하는 주기로 지급하는 임금을 총액 변동 없이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면 노조 동의나 과반수 노동자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국회가 최저임금법에 최저임금 변경절차 특례를 도입하면서 '동의'가 아닌 '의견청취'만으로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도록 했다. 노동자들이 상여금 쪼개기를 반대해도, 반대의견을 청취한 게 된다. 김현제 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은 "급여일 하루 전에 게릴라식으로 이달 월급부터 상여금을 쪼개 지급할 테니 사인하라고 통보했다"며 "설명을 듣고 싶으면 듣고, 듣기 싫으면 말라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구미에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장인 KEC는 지난해부터 월급명세서에 '직능급3' 항목이 신설됐다. 기본급에다 8~9개 수당을 더해도 최저임금에 미달하자 '직능급3'라는 항목을 만들어 최저임금을 맞춘 것이다. 이미옥 노조 KEC지회 수석부지회장은 "기본급이 터무니없이 낮지만 각종 수당과 ‘직능급3’ 형태로 메우면 법망을 피할 수 있게 된다"고 비판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될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며 "최저임금은 준수율이 중요한데 준수율을 담보할 수 없는 조악한 방식으로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서 임금명세표인지 누더기인지 모를 일이 초래됐다"고 우려했다.

이청우 전국모임 집행위원은 "통신요금 할인과 포인트·상품권·식권 등 지금까지 현물로 지급하던 것을 통화로 변경해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사례도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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