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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트라우마에 우는 피해자들 치유법 없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년 5월1일 노동절에 일어난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형을 잃은 노동자는 그 시간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대형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은 트라우마에 짓눌려 산다. 한 노동자는 “와이어 찢기는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고 하소연한다. 정부 산재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은 고통받는 노동자를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

치료-보상-현장개선-복귀, 통합적 지원체계 마련 절실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

트라우마 피해노동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사회적 시각이다. 우리 사회는 산업재해가 일어난 현장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에 대한 고민과 대책이 미흡하다. 2017년 5월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 피해노동자들의 증언을 보면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회사가 치유를 방해하거나 근로복지공단에서 트라우마는 산재인정이 어렵다는 식으로 말해 노동자들의 피해구제를 막는 경우가 있었다. 교육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정부기관과 업무처리 담당자의 인식과 감수성 부재를 해소해야 한다. 나아가 산재처리 절차 단축도 필요하다.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은 처리기간이 길고 노동자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치유를 위한 휴업급여 지급 등 실질적인 치료지원 대책이 시급하다.

상담기관과 병원 간 연계 등 지역적인 지원체계도 필요한데, 정신건강의학과 내 직업적 트라우마 이해도가 부족해 노동자가 치유시기를 놓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치유 과정이 진행되면서 노동자에게 2차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일이 다반사다. 때문에 노동·사회단체가 함께하는 지역적인 지원체계에서 상담과 치료가 온전하게 이뤄져야 한다. 트라우마 피해노동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사회적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 현재까지 이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대책은 전무하다. 게릴라 형태의 직업적 트라우마센터 운영이 아닌 각 지역사회의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트라우마의 의학적 치료뿐만 아니라 가장 도움이 되는 치유는 사고 원인과 문제를 개선하는, 책임자 처벌과 제도 변화·일터 환경개선 등 사회적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고동우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장

산재노동자 정신건강보호정책 강화하겠다
고동우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장

고용노동부는 2017년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 이후 산업재해 사고를 경험하거나 목격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보호를 위해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매뉴얼을 개발해 전국 21개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산재 트라우마 심리상담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대구근로자건강센터를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로 지정해 거제지역 근로자 자살사건, 인천 세일전자 화재사건, 대전 한화공장 폭발사건, 태안 화력발전소 산재사망사고 등에 전문적인 산재 트라우마 상담을 제공했다. 올해도 예산을 1억2천만원에서 2억원으로 확대해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를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트라우마 피해노동자들에 대한 심리상담 서비스를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트라우마 상담 매뉴얼을 수정·보완해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담 과정에서 트라우마 고위험군에 대해서는 산재보상 신청을 안내하고 있다. 앞으로도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개입해 피해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정책적 노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믿음)

중대 사고 발생시 트라우마 피해자 지원제도 미비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믿음)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사망만인율이 2017년 기준 0.52로 선진국의 2~3배 수준에 이르는 노동현실에서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 이른바 트라우마 환자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고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2013년 개정에서야 비로소 ‘업무와 관련해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의해 발생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업무상질병의 하나로 추가했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이유로 한 산업재해승인 신청 건수는 2017년 18건으로 매우 적으며, 그나마 이 중 승인된 것은 12건에 불과하다. 특히 미승인 사건 중에서는 정신질환 진단에 널리 사용되는 이상심리학(DSM-5)상 진단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판정 또한 다수 발견된다.

2017년 노동절의 삼성중공업 크레인 추락사고의 경우 정부에서는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관리 방침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현재 단 12명만이 정신적 외상에 대한 산재피해자로 인정돼 치료를 받고 있을 뿐이다. 같이 현장에 근무하던 중 사고로 형을 잃은 노동자의 경우는 산재 신청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에서 트라우마를 이유로 하는 산재승인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신청을 포기하기도 했다.

노동부는 삼성중공업 사고 이후 산재 트라우마 관리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나 현행 규정은 권고사항으로 실효성이 없다. 지난해 7월 사고노동자가 요청할 경우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가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중대사고 발생시 사고 초기부터 트라우마 피해 대상자를 신속하게 파악해, 적절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소장

노동자가 맘 편히 상담받을 곳이 없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소장

한국노총은 지난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예방사업의 일환으로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에 응했던 노동자들의 반응이 좋았고 사업 효과도 예상보다 높았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우선 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없다. 또 상담으로 인한 불이익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 개선과 더불어 내적인 건강 추구도 반드시 필요한 만큼 정부는 전문상담사와 시설을 위해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올해부터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가 대구근로자건강센터에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트라우마 상담의 부정적인 시선을 없애고 상담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교육하는 것이 절실하다. 모든 국민에게 꼭 필요한 사업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노동자 심리치유 전문적 인력양성과 지원 확대돼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2013년 직업병 인정기준에 ‘외상후 스트레스’가 도입되고, 같은해 여수 폭발사고에서 시신 수습 등을 한 건설노동자 6명이 산재인정을 받았다. 이후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추락사고, 마필관리사 자살 등 산재 발생 사업장에 대한 노동자 트라우마 심리치유가 노동조합과 건강권 단체의 대응으로 진행됐다.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한 전국적 확대,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 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비해 본다면, 현재 트라우마 사업은 그야말로 걸음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부의 이에 대한 전폭적인 집중과 예산배정이 안 되고 있다. 우선적으로는 사망사고가 다발하는 건설업·조선업의 경우는 하청고용·단기고용 노동자여서, 초기대응이 안 되면 해당 노동자들은 일감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면서 개별 노동자가 고통을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 초기에 트라우마사업이 배치돼야 하고, 산재승인 이전에도 비용지원이 되는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두 번째는 노동자 심리치유 사업에 대한 전문적 인력양성과 지원방안이 대대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현재 정신건강관련 의료와 심리 치유에서 전문성은 매우 부족한 상태다. 현재의 근로자건강센터는 심리치유 담당인력이 한 명에 불과하고,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 예산도 1개당 2억원에 불과하다. 공적영역이 부족한 상태에서 민간자원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이지 않다. 감정노동, 일터 괴롭힘 등 노동자 정신건강과 관련한 사업주 의무를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치유와 예방을 위한 물적 토대는 전혀 준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정신건강, 트라우마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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