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언제나 시작이다. 다시 어제가 시작되고 있다. 스스로를 보수와 민주라 말하는 그들의 세상이 반복되고 있다. 거창하게 신화를 불러내 시시포스(Sisyphos)의 노동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지겨운 일이다. 2년 전 박근혜 정권을 심판했던 촛불집회의 불길이 광화문광장에서 붉게 타올랐던 때만 해도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적폐청산을 통해 다른 세상을 열 것이라는 흥분이 도시의 광장과 거리에 넘쳐 났다. 노동운동은 그 자리에 있었다. 민주노총, 그리고 한국노총 조합원 등 노동자들은 박근혜 정권이 짓밟은 민주주의를 살려 내겠다는 촛불집회에서 더불어민주당원들과 함께 민주시민이 됐다. 그때만 해도 오늘은 관념일 뿐이었다. 학습한 사회운동 이론일 뿐이었다. 어차피 세상은 보수와 민주로 간판을 달고서 그들이 빼앗고 뺏기는, 어쩌면 주거니 받거니 할 거라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가슴 벅찼던 날이었으나, 오늘 돌이켜 보면 가슴이 머리와 다리를 마비시켰던 날이었다.

2. 지난달 28일 사회적 대화, 즉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안건으로 소집한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는 현장발의 내지 수정발의의 세 가지 안을 부결시키고서 위원장의 산회 선언으로 참여의 가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이날 회의를 두고 민주노총 내 이른바 현장파·중앙파·국민파 등 3개 정파 구도만 재확인한 채 아무런 성과 없이 마무리되고 말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명환 위원장은 산회 선언에 앞서 산별대표자 등 내부 의견수렴을 거쳐 새로운 안을 만들어 조만간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니 민주노총은 여전히 사회적 대화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겠다.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에 관한 안건 토론은 사실상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 관한 비판으로 전개됐다. 물론 일부지만 대의원들은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즉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단축,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 등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 왔던 주요 노동정책 성토가 주를 이뤘으나, 일부 대의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이런 노동정책 추진이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달리 친노동이라며 지지하면서 사회적 대화 참여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지난달 28일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2년 전 촛불집회장에서 함께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노동정책에 관해 차갑게 시시비비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에 함께 들었던 촛불은 없었다. 노동의 발판으로 권력에 대한 비판에 날을 세웠으니 2년 전의 그들은 아니었다.

3. 노무현 정권에서 기득권 정규직 귀족노조라는 비난에 격분하던 모습은 이젠 찾아볼 수가 없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몰매를 가해 왔다. 이젠 그런 비난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주요 노동정책을 추진할 때면 어김없이 쏟아져 나왔다. 공공기관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데 대해서도 정규직의 고임금 및 고용보장이 그걸 어렵게 한다고 비난하고, 최저임금 인상은 대기업 정규직까지도 해당돼 문제라며 상여금 등을 포함시키는 최저임금법 개정을 하고서 다시 최저임금위원회를 개선하겠다고 추진하는 등 각종 노동정책을 추진할 때면 어김없이 기득권 정규직과 귀족노조가 문제라는 비판을 쏟아 내고서 노동자 권리를 위한 법은 개악되고 말았다. 분명히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자를 위하는 말을 쏟아 내건만 노동정책은 이렇게 자꾸만 뭔가 노동자권리를 위해서 나아가는 듯하다가 뒷걸음질이다. 이낙연·홍남기·이재갑 등 문재인 정부의 총리·부총리·고용노동부 장관 등은 뒷걸음질할 때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그 말들을 쏟아 내면서 신호를 보냈고 홍영표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입법을 추진해 왔다. 오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 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노동정책을 몰아붙일 때면 그들은 자유한국당 등 보수의 당과 의기투합한다.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노동자권리 삭감에 나서는 데에는 민주와 보수의 그들은 찬성으로 한편을 먹는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이 나라 노동운동은 실패로 보인다. 오늘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 청년실업, 대기업과 중소·영세 사업장 격차 등 심각한 노동문제는 기득권 정규직의 노동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긴다. 나아가 기업과 국민경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여긴다. 한마디로 노동운동·노동의 실패에서 이 나라의 문제가 시작됐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니 그들에겐 답이 분명하다. 경사노위에 참여해서 기득권을 양보하든가, 아니면 권력에 의해 강제로 기득권을 박탈당하든가. 오늘은 전자를 앞세우고 있다면, 어제는 후자를 앞세웠다는 것이 다르지만 이 나라에서 실패를 노동의 것으로 돌리는 것에는 다르지 않다.

4. 그러나 노동시장의 실패는 자본의 실패일 뿐이다. 고용불안과 저임금 비정규직은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광포한 노동착취의 산물이다. 이 나라에서 파견근로·기간제근로·사내하청 간접고용 등의 비정규 노동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 자본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양산해 내고 있다. 그로 인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용·임금 등에서 정규직보다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 비정규직이란 비천한 신분에 내몰린 것이 명백한데도 이 나라에서는 정규직이 문제라고 탓해 왔다. 대기업과 중소·영세 사업장 격차문제도 대기업 정규직 탓은 아니다. 그럼에도 중소·영세 사업장 사용자가 높은 수준의 노동조건으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대기업 노동자 탓이라고 당연하게 말해 왔다. 대기업 정규직이 높은 노동조건이 아니었다면 대기업 자본이 중소·영세 자본에 납품단가를 올려 줬을 것이고 그러면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노동조건이 개선됐을 것이라면서 오늘도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귀족노조라 비난하고 있다. 분명히 중소·영세 사업장에 납품단가를 후려쳐 갈취한 것은 대기업 자본이었다. 하지만 비난은 그 노동자의 몫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언론도 권력도 비난은 대기업 정규직을 향해 왔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대기업 정규직이니까, 고용이 보장되고 많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니까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대기업 사업장 수익에서 대기업 사용자 자본과 노동, 그리고 중소·영세 자본의 몫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 이 세상, 즉 자본마다 제각각으로 이윤추구 활동을 하는 걸 생존법칙으로 하고 있는 세상에선 가당치도 않은 비난이다. 물론 노동자 간 연대를 꿈꾸는 노동운동은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을 용납해선 안 되고, 그 철폐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하지만 그 철폐투쟁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이 그들의 몫이 될 수 없다.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노동 격차·실업문제 등 각종 노동문제, 나아가 기업경쟁력과 경제성장 저하 등 기업과 국민경제 문제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임금 등 노동조건이 높은 대기업 정규직 탓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노동자와의 격차 해소를 해결방안으로 추진해 왔다. 오늘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을 보면, 적어도 이러한 점에서는 과거 박근혜 정권과 기본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다른 것이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수시로 노동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이 나라, 즉 국가 대한민국 노동문제는 노동의 실패가 될 수 없다. 국가의 각종 문제는 권력의 문제일 수밖에 없고, 국가의 실패는 권력의 실패인 것이다. 이상을 종합해서 보자. 노동의 실패는 없다. 노동의 실패라고 왜곡 선전하고, 노동을 탓하는 자본과 권력이 있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인간의 역사는 실패를 전가해 온 역사였다. 주인과 권력의 실패를 일하는 자에게 전가시켜 계속해서 복종해 일하도록 한 역사였고, 오늘도 달라지지 않았다.

5. 시장과 국가의 실패를 노동에 전가하는지를 두고서 바라봐야만 한다. 오늘 다시 어제가 반복되고 있다면, 이 나라에서 문제를 노동의 탓으로 전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 만들기를 하고자 한다면 유예를 허용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고, 그래서 사용자로 하여금 노동자를 추가로 채용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예외를 허용해서 사용자가 노동자를 추가로 채용해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존과 다름없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 만들기는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만들기가 되지 않도록 노동시간단축 정책을 추진해 왔고, 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을 말하며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자 소득이 증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상여금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자 소득 증가로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말았다. 이러한 노동정책을 추진할 때면 어김이 없다. 자본과 권력은 노동에 실패를 계속 전가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