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노동역사박물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노동역사박물관은 경기도 고양시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다. 현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부운동을 펼치고 있다. 기부운동은 노동운동 기록을 보전·전산화하고 노동조합사와 투쟁백서를 편찬하는 ㈔노동자역사 한내가 중심이 돼 이끌고 있다.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이 노동역사박물관을 설립해야 하는 이유와 노동자 참여를 요청하는 글을 보내왔다.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

며칠 전 설연휴를 전후해 노동자역사 한내가 새로 건립한 경기도 고양 일산동구 설문동 건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는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새 건물에 많은 수의 중량랙과 거대한 모빌랙을 설치했고 또 청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자체도 큰일이었지만 한내가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자료를 옮기는 일에 비하면 ‘자잘한’ 일정이었습니다. 큰 일정 중 하나는 6년 전 임시로 마련했던 수장고에 있던 수집 자료를 옮기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 신촌에 있는 사무실을 설문동으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수장고 자료를 옮기는 날, 12명의 사람들이 설문동으로 모였습니다. 설을 앞두고 시간 내기 빠듯했을 텐데, 민주노조 조합원들과 사회단체 상근자들이 자발적으로 기꺼이 시간을 내어 줬습니다. 임시 수장고에 있던 거대한 중량랙을 해체해 가면서 거기에 보관돼 있던 자료들을 팰릿에 옮겼고 지게차는 쉴 새 없이 팰릿을 앞마당에 부려 놓았습니다. 사다리차 짐 부리는 평판에 지게차가 팰릿을 올려놓으면 2층에서 받아 또 쉴 새 없이 새로 설치한 모빌랙에 자료를 수납했습니다. 몇 천 상자의 자료가 컨베이어에 올려진 것 같았고 그 몇 천 상자를 옮기고 나자 10시간가량의 이사가 ‘일단은’ 끝났습니다. 다들 힘들고 지쳤지만 첫 이사 일정을 마치고 소주 한잔씩 기울이면서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설연휴가 지나고 귀성했다 올라온 사람들 9명이 다시 모였습니다. 신촌 사무실을 설문동으로 옮겼습니다. 이번에는 도서류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11년 전 한내가 만들어질 때부터 쓰던 책장들은 이제 일부는 부서지고 일부는 오래돼 등허리가 굽었습니다. 아마 그만큼 한내에서 일했던 사람들, 한내와 함께했던 700여 후원회원들, 자료를 모으고 노조사·투쟁사를 만들어 냈던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늙었겠죠. 노안이 오고 허리가 굽고 살이 붙고 병에 걸리고 머리가 하얗게 샜습니다. 그래도 젊은 조합원들의 새 얼굴도 가끔 눈에 띕니다.

영등포에서 신촌을 거쳤던 한내의 서울 시대가 막을 내렸고 그 11년 동안 우리 각자의 얼굴도, 노동조합운동의 모습도 바뀌었지만 제 눈에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느낀 것은 한내에 모인 그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였습니다. 11년 전 영등포 30평 남짓한 사무실 한편에 큰 모빌랙을 설치했을 때, 저걸 다 채울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전노협 자료와 수많은 도서들을 보유하고 있긴 했지만 아직 모빌랙에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11년이 지난 지금, 제가 보기엔 그때 그 자료 양의 10배가 넘는 자료가 쌓여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금속노조·현대차지부·공공운수노조·공무원노조 등 수많은 노동조합의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노동조합사·투쟁사를 많이 써 냈습니다. 그때마다 자료가 수집되고 PDF 파일로 전산화돼 한내-웹이라는 전산시스템에 등록됐습니다. 많은 노동조합이 한내와 함께 스스로의 자료를 정리하고 역사를 기록했으며 그걸 조합원들과 공유했습니다. ‘노동자 역사쓰기’라는 구호를 내걸고 달려온 11년의 증거가 바로 저 수장고로 올려지기 위해 앞마당에 쌓여 있는 자료들이 보여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노동자 역사쓰기’가 더 이상 어색해지지 않게 된 것이 지난 10여년의 성과라면 앞으로 한내와 노동조합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감히 그것이 노동박물관을 건립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천600만 노동자의 박물관은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움직여지고 있는지, 누가 이 세상의 진짜 주인인지, 그런데 왜 주인이 늘 시련을 겪고 다치고 아프고 심지어는 죽어야만 했는지, 그럼에도 어디에서 어디로 끝도 없는 고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를 알리고 이야기하는 서사가 필요합니다. 노동자의 오디세이, 그 길은 지난 10여년간 노동자들이 기꺼이 한내에 넉넉하게 주체로 함께했던 그 시간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입니다. 죽음의 시간을 삶의 시간으로 역전시켜 내는 노동자의 선언, 노동박물관이 우리 자긍심의 근거이자 중심이 되기 위해 한내는 앞으로도 최선의 일상을 살아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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