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 결과) 아빠 몸 속에서 피가 1.8리터 출혈된 것으로 나타났다. 몸 속에서 피가 나는 상황에 아빠는 119 신고도 못하고 심폐소생술만 받으시다가 사건 발생시간 한 시간 지나 119와 가족에게 연락이 닿았다. 한 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10일 노동계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지난 2일 숨진 채 발견된 김아무개(53)씨 산업재해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김씨의 딸 세원씨는 페이스북에 '포스코가 사고 발생 뒤 1시간이 지나서야 119에 신고했다'는 글을 올리며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산재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의 '중대재해 발생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크레인 운전원인 김씨는 설연휴가 시작된 지난 2일 오후 2시부터 포항제철소 제품부두 35톤 크레인에서 인턴사원에게 직무교육을 했다. 오후 4시30분께 김씨는 인턴사원에게 혼자 크레인 연습을 하라고 지시한 뒤 기기 점검을 위해 35미터 상공 크레인 그랩(Grab)으로 이동했다. 인턴사원은 연습을 마친 뒤 김씨에게 세 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자 크레인 그랩으로 올라가서 기계 사이에 끼여(추정) 쓰러진 김씨를 발견했다. 당시 시각은 오후 5시41분이다. 그런데 김씨가 119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선고를 받은 시각은 오후 7시17분이다. 인턴사원이 쓰러진 김씨를 발견한 이후 병원으로 이송하기까지 1시간가량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사고 직후 119에 신고하지 않았던 것일까. 세원씨는 "당시 발견자가 다른 직원과 사내 구급대가 아닌 경찰이나 119구조대에 연락만 해 줬어도 아빠가 살아 있지 않았을까 한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산재은폐 정황은 또 있다. 김씨의 사고 소식이 포항지청에 전해진 것은 오후 7시 무렵이다. 포항지청은 근로감독관을 급파하고 1차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포항지청은 이에 대한 조치 내용으로 "최초 발견시 외상이 없고, 최초 발견자가 경찰에 크레인 작동을 한 적 없다고 진술해 개인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노동부) 본부에 보고하고 부검 결과에 따라 대응하기로 결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부는 사고 이후 이틀 뒤 장기파열에 의한 과다출혈이라는 부검 결과가 나온 4일에서야 포항제철소에 부분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포항지청이 처음부터 개인 질병사로 규정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셈이다. 또 당시 사고 직후 포스코는 사내 재해 속보에서 "노동부 조사에서 산업재해 흔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고 경위서에서도 특별한 외상 없이 쓰러진 점을 들어 사망원인을 심장마비로 지목했다.

그런데 시신에 외상이 없었다거나 크레인 작동을 한 적이 없다는 점도 사실과 다르다. 인턴사원은 김씨를 발견하기 전까지 1시간가량 크레인 운전 연습을 하면서 6차례 작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은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로부터 '절대 심폐소생술로 생길 수 없는 외상'이라는 설명을 들었다"며 "부검 결과도 외부충격으로 인한 장기 파열에 따른 과다출혈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동부와 포항남부경찰서·국과수는 지난 7일부터 합동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기까지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설연휴에 일하다 숨진 김씨는 유족의 부검 요구가 없었다면 개인 질병으로 은폐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포스코의 산재은폐 시도와 노동부·경찰의 미숙한 초동수사에 대한 책임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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