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서울 강서구 등촌동 그늘진 골목이 바람길이라 거기 덩그러니 웅크린 천막이 울었다. 현수막이 널을 뛰고 손팻말이 날았다. 미세먼지 가신 하늘이 쨍했다. 해 들지 않는 천막에서 기타 소리가 울렸다. 노래가 따랐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4천390일, 과연 그들의 해고 이야기는 끝을 몰라 티도 나지 않는 끝자리를 하나 더 보탰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한다. 바람에 홀씨 날려 여기저기 떠다니다 아스팔트 좁은 틈에 뿌리 내리기를 반복했다. 인천 어느 문 닫은 공장 앞에서,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또 여기 등촌동까지 거친 틈에 살았다. 13년, 억세고 질기기로 민들레 못지않았다. 홀로 가는 길이며 또 무슨 흘러간 옛노래 메들리가 돌고 돌았다. 광야에서, 언젠가 촛불광장의 애창곡도 흘렀다. 스트로크는 불안했고, 코드 옮겨 잡는 손가락이 느렸다. 높은음은 버거워 가성에 기댔다. 만들 줄은 알았지만 다루는 일이 또 달랐다. 늙어 손가락이 맘 같지 않다고, 기타 연주 6년차 이인근씨가 말했다. 거리에서 긴 밤 지새우느라 비닐마다 맺힌 이슬이 하나둘 뭉쳐 흘러내렸다. 오래 끌던 문제들이 하나둘 풀리는 걸 보면서 우리도 잘돼야지 싶었다고. 농성 신기록은 도대체가 명예롭지 않은 일이라고 흰머리 긁던 임재춘씨가 말했다. 그 머리도 한때 검었다. 솔잎처럼 푸르른 시절 다 갔지만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상록수도 거기 낡은 악보첩 어딘가에 들지 않았던가. 다시 돌고,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인가. 다 늙은 기타노동자의 노래 이야기가 끝을 몰라 하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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