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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쓸모손명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함께)
▲ 손명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함께)

의뢰인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제약회사의 잘나가는 영업사원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젊은 나이에 입사해 20여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했다. 우수사원으로 여러 번 표창을 받고 팀장으로 승진했다. 회사 요청으로 후배사원들 앞에서 영업 노하우를 강의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마다 거래처 병·의원을 찾아가 차와 다과를 대접하며 제품을 설명했고, 추석 때는 한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옷을 입고 거래처를 찾아다녔다. 해마다 연하장을 보내고 세배를 올렸다. 제 자식 얼굴도 못 보는 날이 많았지만 거래처 병원장의 자녀와 함께하는 스키캠프는 빼먹지 않았다.

회사는 영업사원들의 활약으로 성장했고 그 여력으로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그는 청춘을 바친 회사의 성장이 제 일처럼 기뻤다. 그러나 회사는 달랐다. 신약 개발에 성공하고 해외기술 수출로 크게 성장하자 국내 영업이 더 이상 달콤하지 않았다. 회사는 그동안 자신을 성장시켜 준 국내 영업사업을 줄이기로 했다. 그동안 열심히 해 줘서 고맙다, 여기 상패와 금일봉을 드릴 테니 함께 다른 일을 시작해 보자고 했을까? 아니다. 회사가 택한 방식은 장기근속 영업사원들에 대한 대규모 권고사직과 대기발령, 장거리 전보와 징계를 통한 구조조정이었다.

회사는 그동안 영업사원들이 거래처 병·의원으로부터 임의로 제공받아 보고한 매출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회사는 영업사원들의 비위사실을 찾아내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공개하는 의약품 처방자료와 영업사원들이 보고한 매출실적을 대조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매월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영업사원들을 추렸다. 대부분의 영업사원들이 해당됐다. 그렇다고 다 자를 수는 없으니, 매월 30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사원들을 다시 추렸다. 그래도 너무 많았다. 금액을 높여 매월 50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사원들을 추리자 적당한 인원이 모였다. 총 31명. 회사는 영업사원 31명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고, 대기발령 처분을 내렸다. 자신의 쓸모가 다했음을 깨달은 27명은 스스로 퇴사했다. 그를 포함해 끝까지 버틴 몇몇은 정직처분을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회사는 징계처분을 받은 영업사원들을 바로 복직시키지 않고 수개월 자택에 대기시켰다. 그러곤 어느 날 갑자기 20여년 동안 영업업무만 한 이들을 전혀 다른 부서로 전보시키고,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에서 단순·반복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 현대판 유배였다. 그는 참담하고 억울했다. 젊음을 바쳐 일한 회사에서 그의 쓸모가 다했음에 참담했고, 자신을 회사와 동료를 등쳐 먹은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에 억울했다. 참담함은 어찌할 수 없으나 억울함은 참기 어려웠다. 그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노동위원회는 영업사원들이 매출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고의적으로 처방자료를 위·변조하지 않았다고 봤다. 거래처 병·의원과 공모해 처방실적을 부풀리지도 않았고, 병원의 비급여처방 및 청구누락 등으로 심평원의 의약품 처방자료와 병·의원이 영업사원들에게 제공한 매출자료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회사의 그에 대한 징계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동일한 사유로 한 징벌적 전보 역시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은 지난했다. 회사는 심평원에 사실조회를 신청했고, 동료 영업사원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직 중인 영업사원들로 하여금 그의 인성과 능력을 폄하하는 진술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사측 대리인은 일면식도 없는 그를 회사를 속이고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파렴치한으로 몰아갔다. 그는 재판이 열릴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동료 영업사원의 적대적 증언에도, 심평원의 공식 답변과 거래처 병원측의 증언으로 그는 억울함을 풀 수 있었다. 행정법원 역시 그에 대한 징계와 전보가 전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한때 그에게 회사는 자랑거리였다. 아마 회사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회사는 성장했다. 그러나 성장한 회사는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참담함은 어찌할 수 없지만 억울함은 참을 수 없다. 그는 무려 2년을 싸워 결백함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제 겨우 1심, 최근 회사는 항소했다.

손명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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