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모든 사물에는 서로 다른 성질들이 내포돼 있다. 이 서로 다른 성질들은 상호 의존하지만 상황에 따라 대립·투쟁한다. 그래서 모든 사물은 모순적인 통일체다.

문재인 정권의 속성은 친노동인가 친자본인가? 가진 자에게 친화적인가 못 가진 민중에게 친화적인가? 문재인 정권은 그가 속한 정당의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인 데서 보듯이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노동자와 민중에게 친화적인 정권으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본가와 가진 자들에 친화적인 속성도 있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2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에 참배한 후 방명록에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 함께 잘사는 나라! 2019. 1. 2.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1월7일 중소·벤처 자본가 2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화를 가졌는데, 이때 내걸린 표어는 “활력 중소기업! 함께 잘사는 나라”였다. 1월10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장에 내걸린 표어도 “함께 잘사는 나라”였다. 대통령은 또 1월15일 재벌 총수들을 비롯한 대자본가 128명을 청와대로 초대해 신년대화를 가졌다. 이들과의 신년대화에서는 “기업이 커 가는 나라,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라는 표어가 내걸렸다. 대통령은 이날 재벌 총수와 대자본가들의 요청사항을 청취하고 경내를 함께 산책했는데, 이때 청와대가 제공한 보온병에는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한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월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모두가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만하면 문재인 정권의 정책기조가, 그 앞에 이러저런 문구를 덧붙이든 아니든, 대한민국과 한국사회를 “함께 잘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임을 확인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정책기조에는 이와 다른 것 역시 확인되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의 정책기조를 대표하는 표어는 “함께 잘사는 나라” 하나뿐이었는데, 올해 들어 갑자기 “더 잘사는 나라”라는 표어가 그와 더불어 전면에 등장했다. 이 표어는 때로는 “함께 잘사는” 것과 섞여서 내걸렸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내걸렸다.

1월2일 역대 처음으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통령 신년회에서는 “더!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라는 표어와 “더! 잘사는, 안전한, 평화로운 대한민국”이라는 표어가 같이 걸렸다. 이날 신년회에는 4대 재벌 총수를 비롯한 경제계 인사들과 각계각층 주요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1월8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는 “더 잘사는 평화로운 대한민국”이라는 표어가 내걸렸다. 1월1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경제단체장 신년 간담회에서는 “더 잘사는 대한민국을 위한 신년 간담회”라는 명칭이 내걸렸다. 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측에서 홍영표·민병두 의원 등이, 경제계측에서는 손경식 경총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함께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면 “함께 잘사는” 것과 더불어 “더 잘사는” 것이 문재인 정권의 또 하나의 정책기조로 설정됐음을 확인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더 잘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내걸었던 표어인 “잘살아 보세”의 시즌 2다. 70년대의 그 구호가 이미 실현돼 국민이 잘살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잘사는 것을 목표로 삼자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다. 우리나라 재벌대기업은 이미 초국적 기업으로 세계 도처에 진출해 있다.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아제국주의 국가다. 반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10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먹고살고자 이주해 와서 땀 흘려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가계급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은 이미 잘사는 나라고, 경제성장을 통해 자본을 더 축적해 더 잘살게 되는 것을 국가경영 목표로 삼아야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빵부스러기가 조금 아래로 떨어진다. 이것을 낙수효과라고 하는데, 이런 낙수효과는 상위 10~20% 정도의 중산층에게만 해당된다.

“더 잘산다”는 말의 의미와 맥락이 이러하므로 이 표어의 상표권은 수구보수 정치세력에게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이 말을 퍼뜨린 원조는 홍준표다. 그는 지난 대선에 출마하기 전 경남도지사직을 사퇴하면서 자신의 블로그에 이 말을 올렸다. “더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그러므로 “더 잘사는”이란 정책기조와 문재인 정권이 그동안 표방했던 “함께 잘사는”이라는 정책기조는 서로 다름을 넘어 서로 대립적이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할 때에는 가진 자들만 아니라 갖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배려하겠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그게 ‘노동존중 사회’다. 그와 반대로 “더 잘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말에는 박정희 정권 개발독재 이래 민주정부를 거친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속돼 온 대로 노동자·민중을 배제하고 경제활동 성과를 재벌과 자본가계급이 독차지하게 하겠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그러므로 그 두 정책기조는 매우 날카롭게 대립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이렇게 서로 대립적인 두 가지를 2019년 국가정책기조로 동시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권 정책기조는 명백히 이중적이며 모순적이다.

그러면 문재인 정권 경제정책기조에서 어느 것이 지배적일까? 종래에 표방해 온 “함께 잘사는” 것일까, 아니면 새롭게 내건 “더 잘사는” 것일까? 연초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행보와 발언으로 미뤄 볼 때 “함께 잘사는”은 수사에 불과하고 “더 잘사는” 것이 지배적인 기조다. 경제와 민생 가운데 경제를 우선하고 있으며, 케인스주의 의제인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를 신자유주의 의제인 사회안전망으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