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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꽃과 나무 ② 참꽃(진달래)
▲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내 어릴 적 살던 산골 마을(경북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에서는 진달래꽃을 참꽃이라 불렀다.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아버지는 거기서도 더 산속으로 들어간 곳에 있었던 중석 광산의 광부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는데 마을 전체가 가난했고 우리 조무래기들은 늘 배가 고팠다.

그래도 철 따라 산과 들, 내에는 먹을 것들이 많아 우리는 떼 지어 열심히 찾아다녔다. 강에 얼음이 풀리고 땅이 녹기 시작하는 이른 봄, 우리는 괭이며 호미를 들고 양지바른 야산을 누비기 시작한다. 칡넝쿨의 마른 줄기를 찾아 칡뿌리를 캐서 한 입 베어 물면 달짝지근한 칡물이 입안에 가득했다. 한참 씹다 보면 주둥이가 시퍼레지는데 서로 보고 낄낄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4월이면 잎도 나기 전에 산골짝 여기저기 붉은 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바로 참꽃이었다. 동무들과 이 골짝 저 골짝 몰려다니며 꽃잎을 훑어 먹기도 하고, 꽃이 많이 달린 가지를 꺾어 꽃방망이를 만들어 누가 더 크고 멋진가 자랑하기도 했다 . 또 꽃술을 하나씩 골라 서로 걸고는 누구 것이 끊어지나 내기도 했는데, 고르는 재주가 없는지 당기는 요령이 부족한지 나는 늘 졌다. 그래서 나는 어렵게 꺾어서 만든 꽃방망이를 빼앗기곤 했는데, 아마 내가 내기를 싫어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 아닌가 생각된다. 참꽃은 우리 조무래기들의 간식이었고, 놀잇감이었고, 참꽃이 무리 지어 핀 산등성이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참꽃이 지며 가지에 잎이 나고 묏등에는 뾰족뾰족 삘기가 올라올 때면, 참꽃과 비슷한 꽃이 더 크고 화려하게 잎 사이에서 피었는데 우리는 개꽃이라 불렀다. 뒤에 알고 보니 산철쭉이었는데 먹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당시 우리에겐 먹는 게 진짜였고 최고였다.

내 나이 서른 즈음에 서울 수유리 신일중·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됐는데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4·19 묘지가 있었다 . 매년 4월이면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 나도 학생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곤 했다. 그 무렵이면 묘역 주변 산기슭엔 참꽃이 한창이었는데 우리는 묘지 앞에서 묵념하며 노래를 불렀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등마다/ 그날 쓰러져 간 젊은 날의 꽃 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에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 시인의 시조에 한태근 선생님이 곡을 붙인 <진달래>라는 노래인데, 그 당시 4·19 묘역에선 모두가 이 노래를 불렀다. 그 한태근 선생님이 신일고등학교 음악교사였고 나는 한동안 같이 근무했다. 한태근 선생님은 늘 윤이상 선생님의 제자라고 자랑하셨다. 선생님은 1928년 밀양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용정에 있는 광명중학교에 다녔는데, 시인 윤동주와 문익환 목사 등이 다닌 학교였다. 꽃도 그렇지만 사람도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함께 자라는가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봐도 한태근 선생님은 말수는 적었지만 참 멋쟁이셨다. 86년 내가 교육민주화선언의 주도자로 몰려 정부의 탄압으로 사립학교 재단으로부터 파면 위기에 몰렸을 때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맞서 싸워 징계를 막아 주셨다.

그런데 오래전에 백기완 선생님께서 심장병 치료차 독일에 간 적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독일의 여러 인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됐다. 그중 한 분이 음악가 윤이상 선생님이었다. 윤이상 선생님은 백 선생님보다 연배가 상당이 위였음에도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는 등 정성스럽게 따뜻이 맞아 주셨다 한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가 혹심한 고문도 당하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심장병까지 얻어 고생하는 걸 알고 그렇게 깍듯이 대했던 것이다. 윤이상 선생님 초대로 윤 선생님 댁엘 갔는데, 그 집 뜰에 진달래가 한 포기 있어 백 선생님이 관심을 보였더니 북한을 방문하고 어렵게 얻어 온 한국 진달래라며 그 꽃을 보며 어릴 적 고향산천의 진달래를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찡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윤이상 선생님도 조작된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온갖 고초를 겪으셨다.

내 어릴 적 참꽃인 진달래는 우리 강산 어디에서나 봄을 알리며 가장 먼저 핀다. 지금쯤 산에 가면 진달래 망울이 제법 도톰하게 부풀었으리라. 추운 겨울이 끝나 가고 있다는 걸 미리 알려 주고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던 꽃, 우리 강산 어디에서나 가장 흔하게 피어나는 진짜 꽃 참꽃, 진달래꽃은 언제나 우리 곁에 피어나고 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이수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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