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지난 18일 청와대 앞 기습시위를 하던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을 비롯한 5명이 체포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려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처음엔 여느 비정규 노동자들의 집회소식 정도로 흘려들었다. 그런데 며칠 뒤 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뉴스를 듣고 ‘이건 뭐지?’라는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영장이 기각되기까지 며칠간 언론은 영장청구서에 담긴 경찰과 검찰이 한 주장에 집중했다.

청구된 영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명료했고 정의롭다. “피의자가 기초적 사실관계를 인정하며 증거자료가 확보된 점, 수사에 임하는 태도나 주거 및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불구속수사 원칙을 들지 않더라도, 피켓을 들고 10초간 구호를 외쳤다는 게, 누가 보더라도 구속의 상당한 이유는 될 수는 없지 않는가. 그곳이 아무리 청와대 앞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사전에 무리한 청구라는 판단을 했던지, 경찰과 검찰은 당일 벌인 기습집회에 더해 지난해 9월과 11월 정부·국회 앞 등에서 진행한 미신고 집회 사유 등 6건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까지 포함했다고 한다. 상습성을 인정받고 싶었을 게다. 참으로 당당하지 못한 행태가 아닌가.

그런데 수사기관이 영장을 신청하면서 구속사유와 무관한 노동조합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았다는 게 알려지면서 논란은 커져 갔다. ‘민주노총은 암적 존재’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법치와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라고 전제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게다. 모두가 기억하듯이 지난해 청와대 인사와 얼마 전 바른미래당 한 의원이 한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것이 분명하다.

얼토당토않은, 굳이 당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표현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영장청구 행태는 중대한 위법이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구속사유와 상당성요건에는 행위자의 신분까지 고려하라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법관에게 선입관을 주기 위한 다분히 의도된 표현까지 허락하고 있지 않다. 수사기관의 주장을 일반화하자면 ‘조합원이라면 구속사유를 가중할 수 있다’는 희한한 결론에 이른다.

참고로 인간의 생명과 신체의 구속이 따르는 형사처벌이 갖는 엄중함을 고려해 우리나라는 공소제기에 있어 ‘공소장일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재판부가 예단할 수 있는 그 어떤 자료나 설명도 금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구속영장 발부는 ‘유죄’로 받아들여질 만큼, 법원의 가장 중요한 재판행위 중 하나고, 그 자체로 행위자에게 엄청난 고통이 따르므로 그 요건이 그 무엇보다 엄격해야 한다. 수사기관의 수사편의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더 큰 불안은 위 표현을 일개 수사기관의 일탈로만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노동조합에 대한 수사기관의 평소 생각의 단면이 확인된 것이다. ‘노동존중 사회’가 굳이 ‘노동조합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충분히 보장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보장’하는 게 ‘노동존중’의 최선의 길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수사기관은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더구나 노동존중 사회는 그 누구도 아닌 현직 대통령의 제1 국정목표다. 현장 일선에서 이를 수행해야 할 책무를 감당하는 자로서, 그러나 이들은 전혀 그럴 생각과 의지가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인신구속에 대한, 그리고 노동에 대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대정신(헌법)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넓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현장행정은 여전히 과거에 머문 위헌적 방식을 고집했다.

이 사건은 결코 하나의 구속영장 기각사건이 아니다. 나쁜 이름붙이기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만약 구속영장에서 적은 것처럼 ‘노동조합은 암’이라는 황당한 선전이 확산된다면,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이 늘어난다면, 우리가 바라는 노동관계제도는 개선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할 게 분명하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은 고사하고, 노동기본권을 더 제약하는 개악도 없으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비정규 노동자들이 더 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70여년 전 바다 건너 메카시의 거짓선동은 냉전 초 미국에서 ‘노동쟁의에 대해 긴급조정, 노동조합 지도자에게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선언까지 강요하는’ 괴물 같은 법(태프트하틀리법)을 낳았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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