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해 12월28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한 의원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지난해 11월20일 발표한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현행법을 결사의 자유 협약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법안 내용을 살펴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을 위반하는 내용들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개정안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목적·시기·장소·인원 등을 정해 사용자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예를 들면 산별노조 같은 초기업노조의 간부가 조합원이 있는 사업장에 출입을 하거나 사업장에서 조합활동을 하려면 사용자 승인을 얻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ILO는 기업에 고용돼 있지 않은 노조간부들이 조합원이 존재하는 해당 기업 사업장에 출입하고 조합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해 왔다. 법원도 초기업노조 간부들이 조합원이 존재하는 사업장에 출입하고 활동할 권리를 인정하는 추세다.

더욱이 개정안은 비정규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자신이 매일 노동하는 공간이 사용사업주 사업장이다. 현재 법원과 고용노동부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사용사업주 사업장 내에서 조합활동, 쟁의행위를 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안에 따르면 이들 역시 사용사업주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으로 해석돼 단결권에 새로운 제약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똑같은 문제가 특수고용 노동자 단결권에 관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개정안은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정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교섭대표노조를 결정할 때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은 조합원수 산정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비정규 노동자, 구직 중인 자, 해고자 등을 조직한 노조일수록 다른 노조에 비해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개정안을 보면서 많은 의구심을 갖게 됐다.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한 법안이라는데, 그동안 경사노위에서 논의되던 것보다 후퇴한 법안을 여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경위가 무엇인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서라면서 ILO 결사의 자유 원칙과 상충하는 내용을 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을 풀기 위해 필자가 소속된 민주주의법학연구회를 비롯한 노동법률가단체들이 한정애 의원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사회적 대화기구라는 곳에서 ‘공익위원’ ‘전문가’ 타이틀이 붙은 교수들이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내고, 노사가 반대하면, 공익위원안을 넘겨받은 정부나 여당이 더욱 후퇴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과정을 과거에 여러 번 경험했다. 일례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주도로 1998년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맺고,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의 법제화를 받도록 하면서 타협책으로 내놓았던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 약속은 끝내 이행되지 않았다. 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관련법안을 만들었지만 기업별노조가 초기업노조로 전환하도록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운 법무부 반대 속에서 사회적 타협은 잊혔다.

한정애 의원 개정안을 보면서 정부·국회에는 노동자 단결 범위가 넓어지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해고(계약해지)와 실업을 주기적으로 반복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기업의 종업원으로만 조직대상을 한정하지 않는 초기업노조의 조합활동에 새로운 제한을 부여하는 한 의원 법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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