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집 앞에서 만난 정병준(왼쪽) 금속노조 경남지부 삼성테크윈지회장과 허순규 수석부지회장. <배혜정 기자>
23일 아침 7시20분. 금속노조 마크를 새긴 승합차 한 대가 미세먼지 품은 아침 공기를 가르며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주택가 앞에 멈췄다. 작업복과 솜바지를 껴입은 남성 5명이 스피커를 챙겨 차에서 내렸다.

"회장님께 문안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이날로 6일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집 앞으로 출근한 정병준(52)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장과 조합원들이다. 최근 한화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임직원들이 '중장기 노사 안정화 전략'에 따라 조직적으로 노조활동에 개입하며 탄압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진 가운데, 삼성테크윈지회는 지난 18일부터 김승연 회장 자택 앞에서 노조탄압을 규탄하고 정상화 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이어진다.

창원지검은 지난달 31일 한화테크윈 전무·상무·팀장 등 3명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창원지검은 "(회사의 탈퇴공작으로) 2015년 창원2사업장에서 금속노조 소속 직장 37명이 전원 탈퇴하고, 같은해 12월 반장 45명 중 25명이 탈퇴했다"고 밝혔다.

"이런 게 한화식 신용과 의리?"

"복수노조를 이용해 금속노조만 차별하는 식으로 탄압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니 정말 참담합니다. 이게 한화그룹이 그룹문화로 자랑하는 신용과 의리입니까?"

정병준 지회장과 조합원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한화테크윈의 노조탄압 논란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1월 회사를 삼성그룹에서 한화그룹으로 매각한다는 방침이 나오고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12월 노조를 설립해 금속노조에 가입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6명이 해고되고 60여명이 징계를 받은 것도 이즈음이다. 회사가 매각된 2015년 6월 본격적인 노조탄압 시나리오가 가동됐다.

한화테크윈은 '중장기 노사 안정화 전략'을 세워 노조탈퇴 작업을 본격화했다. 사측은 지회 설립 나흘 만에 관리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기업노조와 지회 조합원을 노골적으로 차별했다. 금속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잔업·특근에서 배제했고, 인사고과 최하위점을 줬다.

김영광(28) 조직부장은 2008년 전국기능올림픽대회에서 폴리메카닉스 분야 동메달을 따고 그해 삼성테크윈에 특채로 입사했다. 실력검증은 이미 끝났다는 얘기다. 그랬던 그가 지회 대의원으로 활동한 2015년부터 4년 연속 하위고과를 받았다.

"동기들은 대리급으로 올라갔는데 노조간부라는 이유로 저만 아직도 사원이네요."

허순규(45) 수석부지회장은 "(금속노조) 조끼만 벗으면 고과점수가 안 되는데도 진급을 시켜 주니까 탈퇴하는 조합원들이 생겼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4년간 이어진 차별·탄압에 1천300여명이던 조합원은 830여명으로 줄었다.

내년 6월 고용안정 합의 종료, 임단협은 '오리무중'

정 지회장은 "회사가 교섭을 해태하는 방식으로 금속노조를 고사시키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매각 당시 합의한 '5년 고용보장' 유효기간이 내년 6월30일이면 끝나기 때문에 지회로서는 단체협약 체결이 시급하다. 하지만 아직 2017년 단협도 체결하지 못한 상태다. 지회는 회사가 "위(그룹)에서 컨펌이 안 나온다"거나 "결재가 안 된다며 교섭을 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지회장은 "지금대로라면 내년 6월 이후 조합원들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허순규 수석부지회장은 "삼성테크윈지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회사가 빨리 인정했으면 한다"며 "김승연 회장이 진심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하고 싶으면 노조혐오에서 벗어나 잘못을 사과하고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아직 김승연 회장을 보지 못했지만 설 전까지는 김 회장 집 앞 출근도장을 찍을 계획이다. 그리고 매일 높은 담장을 향해 소리칠 계획이다.

"김승연 회장님, 이제 회장님이 책임 좀 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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