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KB국민은행 노사가 임금·단체협약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사측의 입장 번복으로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노조의 파업 유보와 양보에도 회사가 임단협 타결을 늦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금피크제 양보하고, 파업 유보했건만…"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박홍배)는 21일 “노측과 사측이 각각 잠정합의서를 작성·교환한 뒤 합의 직전까지 갔던 교섭이 은행의 입장 번복으로 불발됐다”고 밝혔다. 지부에 따르면 노사는 지난 18일 ‘임단협 잠정합의서’ 초안을 만들어 대표자교섭을 했다.

박홍배 위원장과 허인 은행장은 근소한 입장차를 확인한 뒤 쟁점을 좁히기 위해 20일 다시 마주 앉았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함께했다. 지부는 쟁점이 됐던 ‘무노동 무임금’ 보완과 임금피크제 진입시기 연장에 대해 한발 양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부는 이달 8일 하루 시한부파업을 했다. KB국민은행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것은 2000년 주택·국민은행 합병 반대파업 이후 19년 만이었다. 지부는 임금보전을 위해 파업 참가자들에게 회사가 유급휴일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이를 되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부는 금융산업 노사의 산별중앙교섭 합의에 따라 은행측에 임금피크제 진입시기를 57세로 1년 연장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수정안을 내놓았다. 지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진입시기를 일괄적으로 1년 늦추는 것을 요구했는데 절충점을 찾기 위해 일부 직군의 경우 6개월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지부가 기존 요구에서 물러선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최대 쟁점인 페이밴드(호봉상한제)와 L0직군(정규직 전환직군) 근속기간 인정 문제에서 은행측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중앙노동위 사후조정으로 마무리될 듯

은행은 교섭에서 "페이밴드를 모든 직원에게 적용하자"고 요구했다. 페이밴드는 2014년 도입된 제도다. 2014년 11월 이후 입사자부터 페이밴드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일정 기간 안에 승진하지 못하면 기본급 인상이 제한된다.

기존 입사자에게는 호봉제가 적용된다. 지부는 페이밴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L0직군은 과거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군을 뜻한다. 주로 은행창구 텔러로 일한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은행측이 이들의 근속·경력을 인정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노사는 20일 잠정합의안에서 "노사는 즉시 '인사제도 TFT'를 구성하고, L0로 전환된 직원의 근속연수 인정 및 페이밴드를 포함한 합리적인 급여체계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노사는 "2014년 11월1일 이후 입행한 직원에 대한 페이밴드는 새로운 급여체계 합의시까지 적용을 유보한다"는 내용도 잠정합의안에 담았다.

노사가 타협안을 도출하면서 당일 교섭이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은행측이 같은날 저녁 재개된 교섭에서 문구 수정을 요구했다. 은행은 "잠정합의안에 기한이 없어 새로운 급여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페이밴드 적용이 무기한 유보될 수밖에 없다"며 "페이밴드를 2019년 중 재논의하자는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노조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은행은 올해 페이밴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전날 교섭 타결이 임박했다며 2차 파업 철회를 지시했다. 지부는 이날 집행위원회를 열어 30일로 예고한 2차 파업을 철회했다. 지부 관계자는 “교섭 타결이 가까워졌지만 일부 이견이 있어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 내용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교섭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중앙노동위는 23일 KB국민은행 노사가 함께 신청한 쟁의 사후조정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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