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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되기 전에 잃어버린 일과 삶을 되찾고 싶습니다김경봉 금속노조 콜텍지회 조합원
▲ 김경봉 금속노조 콜텍지회 조합원

2007년 4월9일 이른 아침 집을 나서 통근버스에 올랐습니다. 그것이 끝이 보이지 않는 거리 인생, 13년이나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날들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숨이 막히는 공장이었습니다. 아이가 아파도, 애경사가 있어도 조퇴나 월차 한 번 쓰려면 자존심을 내팽개쳐야만 했습니다. 출근하는 길 교통사고로 입원한 동료가 전화 한 통으로 해고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리자 입맛에 따라 호봉표도 없는 월급은 천차만별이었지만 항의할 수도 없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굴종하는 노예처럼, 기계처럼 일하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공장이었지만 세계적인 기타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모두 묵묵히 참고 버티며 일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었고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였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는 일할 수 없어서 용기를 낸 우리들은 2006년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박영호 콜텍 사장은 2007년 4월9일 출근길, 공장문 앞에 붙인 공고로 모두 정리해고했습니다.

분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자존심도 팽개치고 일했던 우리를 하루아침에 일회용품처럼 내버리는 정리해고였습니다. 길게는 30년을 노예처럼 일했던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찾겠다고, 함께 살겠다고 목소리를 내자마자 박영호 사장은 가차 없이 공장문을 닫은 것입니다. 그리고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거리의 싸움은 어느새 4천300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저는 콜텍에서 일하기 전에 두 군데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두 군데 모두 7년 만에 문을 닫아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건설현장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세 아이들은 한창 성장하는 중이었고, 생활을 꾸리고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안정적인 월급이 필요했습니다. 집사람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 3월1일 저는 콜텍에 입사했습니다. 나무분진 자욱한 기계반에서 손가락이 잘리고 손톱은 벨트에 깎여 흉해졌지만, 아이들과 아내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40대 후반의 가장이었던 저는 콜텍이 세 아이를 건강하게 교육시키고 소박하게라도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직장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나 열악한 환경을 버티며 일했던 이유는 가족이요, 자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영호 사장은 노동조합 없는 공장을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문을 닫았습니다. 자신의 가족과 자식이 중요하면 지금의 콜텍이 있게 한 노동자들의 가족과 자식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박영호 사장은 법정 최후진술에서 “지랄 같은 노동법 때문에 인생 조졌다”고 오히려 억울해만 했습니다. 저 역시 기업가로서 최소한의 윤리도 없는 콜텍에 입사해서 내 인생 조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리해고된 2007년 세 아이는 각각 대학교 2학년, 고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안정적으로 벌어도 버거울 시기에 정리해고된 아빠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 계획대로 무엇도 할 수 없었습니다. 큰아이는 원하지 않는 휴학을 해야 했고, 둘째 대학 입학등록금과 첫째 복학을 모두 학자금 대출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게 뒤틀린 생활에 아이들 역시 고통받았고 “내가 왜 친구들보다 뒤늦은 출발을 해야 하냐”는 원성에 미안하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넉넉하고 풍족한 적은 없었지만 제 몸 움직여 일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아빠였는데, 정리해고는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본사 앞에서 집회 사회를 보거나 발언을 할 때 정리해고 때문에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이야기를 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막내가 2월이면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합니다. 걱정입니다. 정리해고된 13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고 아빠로서 미안하기만 합니다.

물론 정리해고자로 거리에서 보낸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친구들을 얻었고, 전에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연극을 하고 영화를 찍고 밴드 연주를 직접하며 문화예술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현실과 권력에 의해 감춰진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고, 이 사회의 부조리에 누구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열두 번의 설과 추석을 거리에서 보낸 것으로 충분합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거리의 생활을 끝내고 싶습니다. 콜텍공장에서 계속 일했다면 지금의 저는 근속 20년 노동자로 현장에서 정년을 맞고 이후를 준비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들 배운 기술도 없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년이 되기 전에 이 무거운 투쟁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 주신 많은 분들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힘을 모아 주시기를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거리에서 정년을 맞기 전에 끝장을 내야 합니다. 1월3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 앞으로 달려와 주세요. 연대의 힘을 모아, 설날 전에 일상으르 돌아갈 수 있도록 함께해 주세요.

김경봉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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