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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을 기억해 주세요” 비정규직 1천명 서울시내 행진1천명의 김용균 18~19일 1박2일 구의역-청와대 구간 걸어
▲ 윤자은 기자
“시민 여러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목숨을 잃은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을 기억해 주십시오.”

3년 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군의 동료들과 지난달 동료를 잃은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 공기업 비정규직과 예비노동자 대학생들이 거리에서 “김용균을 잊지 말아 달라”고 외치며 13킬로미터를 걸었다.

“1천100만명이 고통받는 제도라면 바꿔야”

이들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2호선 구의역 1번 출구에서 출발해 성수-뚝섬-왕십리-신당을 지나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어 광화문 고 김용균 분향소를 거쳐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행진 참가자들은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컨베이어벨트를 탄 김용균 상징물과 함께 행진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의 죽음을 알리고 안전하게 일하게 위해서는 정규직 전환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행진 도중 시민들이 많이 모인 번화가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선전전을 했다. 참가자들은 “비정규직 제도가 구의역 김군을 죽이고 발전소 김용균을 죽였다”며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이 신당동 중앙시장 앞에서 선전전을 할 때 입구에서 물건을 고르던 중년 남성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향해 “비정규직을 어떻게 없애냐”고 큰소리로 말했다. 방송차에 탄 비정규 노동자는 “1천100만명이 고통을 받는 제도라면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사자 1천100만명과 전체 노동자가 함께 바꾸고자 하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200여명으로 시작한 행진은 전태일다리에서 1천여명으로 불어났다.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우리 권리를 나라가 찾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며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청와대 앞 비정규직 연행, 울산 비정규직 추락사 전해져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장은 “김용균 어머니를 보고 많은 분들이 이소선 어머니를 떠올린다”며 “용균이와 같은 아이들을 더는 잃지 않아야 한다며 싸우고 계신다”고 말했다.

30여년 동안 봉제공장에서 일하다 지금은 대학에서 청소를 하는 A씨는 “예전에 수십 년 동안 먼지가 날리는 다락방에서 기침을 하며 미싱을 돌렸다”며 “정부는 우리를 산업역군이라 칭찬했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과거와 비슷하게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행진 참가들은 결의대회가 끝난 뒤 종로를 지나 광화문 고 김용균 분향소에 도착했다. 어둑해진 뒤였다. 이들은 고 김용균 분향소에서 묵념하고 촛불을 밝혔다.

행진 도중 세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청와대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비정규직을 없애자는 구호를 외친 비정규 노동자 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 제련소에서 일하던 비정규 노동자가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석탄발전소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내용을 발표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진상규명 입장에 진전이 있지만 재발방지책이 없다”며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정규직화 대책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꼬박 6시간을 걸어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뒤 이튿날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와 고 김용균 5차 범국민 추모제까지 일정을 이어 갔다.

윤자은  bor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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