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가족 등 산재ㆍ재난ㆍ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1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함께 진상규명위 구성과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고 김용균씨 동료들은 지금도 죽음의 외주화·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

산재·재난·참사 유가족·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김용균씨 사고로 국민 여론이 들끓었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실망과 ‘재발할 수 있다’는 절망이 깊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유가족·노동자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 구성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청와대에 요구했다.

“하청노동자는 안전 요구할 권리조차 없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했다. 원청이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를 기존 22개 위험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로 확대했다. 간접고용 노동자 안전과 관련해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고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기 전에 했던 업무는 여전히 간접고용 상태를 벗어나지도, 안전해지지도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가족·피해자들은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지적하며 “왜 국가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느냐”고 분노했다. 제주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는 “지난해 우리 아이 장례식을 치른 뒤 두 달 동안 사회를 등지고 살면서 괴롭고 힘들었다”며 “그 힘든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는데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발전소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국가에서 모든 관리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외주를 주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국가는 경제만 발전시키면 국민이 죽든 말든 상관이 없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어이가 없다”고 일갈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지금 같은 하청구조에서 비정규 노동자는 안전을 요구할 권리조차 없어 (업무가) 외주화되는 순간 위험이 더 커진다”며 “위험의 외주화 중단은 사망사고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조사부터 정부 대책 감시까지 유가족 참여 필요”

유가족·노동자가 참여하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 유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모든 국민이 안전을 바라고 있는데도 같은 참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이 사회가 피해자와 유가족의 요구·바람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참사를 범죄로 접근하고, 범죄 진상조사 과정에 유가족이 참여해 조사하고 처벌 과정까지 지켜보며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마련한 대책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까지 피해자·유가족이 직접 할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아들이 떠난 지 37일이 됐는데 아직도 아들 이름을 부르면 금방 대답할 것만 같아서 전화도 해 보고 카톡도 해 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미칠 것 같다”며 “잘못을 저지른 기업이나 정부를 절대로 용서하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산재·재난·참사 피해자 및 가족들이 대통령께 보내는 글’이라는 제목의 의견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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