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건설일용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

서울시는 2016년 건설업계 고질적 문제인 3불(하도급 불공정·근로자 불안·부실공사) 해결을 위한 건설업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건설일용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를 전국 최초로 개발해 서울시가 발주하는 모든 건설공사 현장에 적용했다. 건설일용직 노동자에게 적정임금과 노동시간·휴게시간을 보장하는 내용이다. 노동자 생활안정과 복지증진·고용안정에 기여해 다른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런데 호평을 받는 서울시 건설일용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가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근로계약 해지사유에 집회·파업 등 집단행동을 주도하거나 참여한 경우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파업하면 사업주에게 손해배상 하라?

13일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2017년 7월부터 서울시 발주 공사현장에서 시행 중인 건설일용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에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제약하고 이를 해고사유로 적시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서울시 건설일용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를 확인했더니 "현장 내에서 사전 승인받지 않은 집회(모임)·집단행동·태업·준법투쟁·업무방해 등을 주도했거나 참여한 경우"가 근로계약 해지사유로 명시돼 있었다. "작업장 내 폭행, 폭언, 유인물 무단배포, 금연구역에서 흡연, 무단촬영 등으로 근무 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도 근로계약 해지사유다.

서울시는 또 표준근로계약상 '기타근로조건'에 "근로자가 계약기간 중 퇴직하고자 할 경우 7일 전에 통보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사전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퇴직하거나 태업·파업·업무방해 등 중대사고 원인제공으로 인해 사업주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노동계는 “표준근로계약서 내용이 부당한 근로계약에 해당하고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단체행동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육길수 건설산업노조 사무처장은 “노조법상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해고할 수는 없다”며 “헌법에서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이를 해고사유로 명시한 것은 명백히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시퇴근·안전운전 등 준법투쟁을 할 때도 사용자 승인을 받게 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사전통보 없는 일방적 퇴직이나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게 하는 것 역시 부당한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문구변경 가능하나 제도 취지를 봐야”

서울시 건설일용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는 중앙정부에서도 벤치마킹해 지난해 전국 10개 공사현장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최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경기도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건설노동자 적정임금과 휴게시간 보장을 위해 마련한 표준근로계약서에 노동자 기본권 제약 내용을 담으면서 서울시 스스로가 제도 취지에 흠집을 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송주현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건설노동자에게는 취업규칙이 없는데 표준근로계약서의 근로계약 해지사유와 기타근로조건 조항이 이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며 “건설일용 노동자 적정임금 보장이라는 제도 취지는 긍정적으로 인정하지만 노동계와 최소한의 협의를 통해 매뉴얼을 만들었다면 문제되는 문구가 삽입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건설일용 노동자 역시 노조를 만들 수 있고 실제 노조가 존재한다”며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근로계약을 통해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문 변호사는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역시 맞지 않다”며 “파업 성격이 불법인지 합법인지 묻기도 전에 일률적으로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노동자 단체행동권을 제약한 것으로, 근로계약서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문제가 된 문구를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건설일용 노동자 적정임금 보장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제도 취지에 초점을 맞춰 표준근로계약서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당시 공인노무사와 고용노동부 자문을 받았다”며 “노동계가 근로계약 해지사유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 만큼 지난주 노동부에 관련 내용을 다시 질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부 답변을 확인하고 표준근로계약서상 ‘근로계약 해지사유’ 조항을 ‘근로자 준수사항’ 등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공정 근로계약과 포괄임금 문제를 해결하고자 어렵게 만든 표준근로계약서 취지를 뒤로한 채 문구 하나하나를 문제 삼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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