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2018년은 정말로 많은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면서 그동안 가로막혔던 화학물질 관련 제도개선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까지 화학물질 사고에 대한 대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활화학제품의 모든 성분공개를 통해 원료공급망을 관리할 수 있는 사회로 진입했지만 가습기 살균제, 계란과 생리대에 이어 침대까지 문제가 드러나면서 일상의 ‘위험한 안락함’에 대한 두려움은 갈수록 커졌다. 이에 더해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업무를 개시했다. 일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업재해 사망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 목표가 수립됐다.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님의 죽음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으로 이어졌다.

변화의 바퀴가 움직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바퀴가 얼마나 움직일지는 모르겠다. 주변의 경치를 모두 바꿀 만큼 멀리 달려가고 싶지만,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는지 자꾸 묻게 된다. 안전이 생활화된 사회는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식할 때 만들어진다. 튀어나온 돌부리를 피하지 못한 어린이를 나무라는 사회와 돌부리를 제거해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만드는 사회는 분명 같지 않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넘어서 사회 전체가 위험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제거하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로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위험을 똑바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위험을 인정하면 일상의 평온함이 깨지기 때문에 사람은 심리적으로 위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쁜 국가가 위험을 숨기는 역할을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산재를 당한 노동자를 치료하고 지원해야 할 산재보험이 기금운용을 걱정하면서 지출을 줄이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 그러면 산재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줄이게 되고, 일하다가 병들고 다쳐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들에게 발생한 피해는 공식적으로는 피해가 아니며 그들의 일터에 존재하는 위험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 돼 버린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가린다 해도 피해자들은 자신 앞의 위험을 똑바로 대면할 수밖에 없다. 억울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이 위험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공정하게 재해를 조사해 보상하라고 요구하게 된다.

위로하고 보듬어 안아 줘도 부족할 이 피해자들을 외면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나쁜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색깔을 씌운다. 피해자들의 거친 언어와 거친 행동을 꼬투리 잡아 피해를 가리려 한다. 뭘 하다가 다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일하다 다칠 만큼 무식하고 부주의한 것들이 기관에 몰려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말한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 이런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났다. 피해자들에게는 참으로 나쁜 정부였다.

그리고 2018년 12월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이 법정 구속됐다. 2017년 9월 근로복지공단의 잘못된 산재 조사로 인해 병들고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발생했다. 박세민 동지는 이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의 부당한 판정에 대해 노동조합의 노동안전 책임자로서 그가 항상 해 왔던 일이다. 그러나 공단 직원들은 박세민 동지를 비롯한 노동자들을 민원인으로서가 아니라 적대적 대상으로 여기며 건물에서 퇴거를 강압했고 이는 서로 마찰로 이어져 한 직원이 피해를 입게 됐다. 이를 놓고 법원은 “피고인 등의 행동은 적법한 사법 절차를 통하지 않고 다수의 위력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되며 잘못된 관행 및 사고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어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결정을 했다고 2018년 12월12일자 조선일보가 전했다. 정론지를 표방하는 조선일보가 설마 거짓을 보도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재판부가 진실로 저렇게 생각하고 판결했다는 것인데 믿기가 어렵다. 진실로 재판부가 저런 사고를 했다면 이 정권도 과거의 나쁜 정부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산재 문제를 바라보는 것인데, 정말 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바퀴가 움직이고 있는데 이를 국가가 막아서서는 안 된다. 저 높은 곳에서 상처 입은 이들을 내려다보며 피해자의 아픔은 아랑곳없이 왜 좀 더 교양 있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핍박하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가 아닙니다. 국가의 역할은 산재 현장에 찾아와 피해를 함께 확인하고, 아파하고, 미안해하는 것이다. 정작 국가가 그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오늘도 피해노동자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거칠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세민 실장의 항소심이 곧 열린다고 한다. 부디 바라건대 안전한 일터,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겹게 전진하는 바퀴가 법원의 판결로 제동이 걸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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