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는 결정구조 이원화를 골자로 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지난 7일 발표하면서 "합리성과 객관성,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그런데 개편안을 발표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현재 운영 중인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구조가 국제노동기구(ILO) 권고(협약)에 부합한다"는 이유였다. 재계와 보수언론의 '기승전최저임금' 공격에 밀린 정부가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위해 말을 바꿨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인사청문회 답변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신중해야"

8일 정의당 노동이당당한나라본부(본부장 김영훈)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최저임금 개편안은 최저임금 인상속도에 목맨 졸속적이고 일방적인 개편안"이라며 "심지어 이재갑 장관은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 '현행 결정구조가 ILO 권고에 부합한다'고 밝힌 지 4개월 만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꿨다"고 비난했다.

최저임금은 노사 이슈 중에서도 민감하고 첨예한 이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비롯한 운영방안은 논쟁적인 지점이 많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운영된 최저임금 제도개선TF에서도 최저임금위 이원화를 골자로 한 '최저임금 결정구조·구성 개편' TF 권고안을 내놓긴 했지만, 노사 합의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부에 논의 결과를 이송했다. 당시에도 노동계는 "이원화 방식에 반대하며 현행 구조가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이재갑 장관이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를 통해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여러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일관되게 "신중한 접근"을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2001년 비준한 ILO 협약 131호 4조는 최저임금위에서 최저임금을 다룰 때 노사 당사자 참여를 통한 사회적 협의를 우선시하도록 돼 있다. 노·사·공익위원 9명씩 참여하는 현행 최저임금위 결정구조는 매년 최저임금 결정 때마다 갈등을 일으키긴 했지만 ILO 협약처럼 노사공 3자위원회 정신을 반영한 틀거리로 기능했다.

노동부는 이번 개편안 또한 ILO 협약에 부합하는 노사공 3자 위원회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구간설정위원회 전문가위원 선정 과정에서도 노사 참여가 보장되고 공정성이 담보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사 당사자 협의 이전에 당사자를 배제한 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구간설정위를 두는 것만으로도 노사 당사자 협의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해외사례를 살펴봐도 최저임금위 같은 형태의 최저임금 결정 또는 권고기구를 두고 전국적으로 단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국가(영국·아일랜드·호주·독일) 가운데 이원화 구조를 도입한 나라는 없다. 최저임금을 차등해 적용하는 국가 중에서는 지역별 차등적용을 위해 중앙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구간을 설정하는 일본 사례가 있을 뿐이다. 김영훈 본부장은 "개편안에 따르면 구간설정 단계부터 정부 추천 전문가위원이 참여하는 만큼 정부개입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이 비준한 ILO 협약 131호의 대원칙 중 하나가 노사 결정구조 강화라는 점에서 부적절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와 사전에 논의 안 해

개편안이 나오기까지 절차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부는 2017년 12월 최저임금 제도개선TF에서 나온 권고안을 토대로 개편안을 작성했기 때문에 노사 단체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했다고 주장한다.

당시에는 산입범위 확대 문제가 이슈화하면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합의불발' 결과가 정부에 보고됐을 뿐이다. 이마저도 이전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된 내용이다. 새로 구성된 11대 최저임금위에서는 이원화 방식을 다룬 적이 없다. 지난해 7월 최저임금 결정 이후 가을께 최저임금위원 간 한 차례 모임을 갖긴 했어도 이원화 방안 관련 얘기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위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거나 "식물화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인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결정구조 이원화를 비롯해 노사 간 쟁점을 최저임금위 제도개선 공론화로 수렴해 차분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매년 최저임금위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했던 27명의 위원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은 현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최저임금위원장인 류장수 부경대 교수(경제학)는 "정부의 사전설명이나 교감이 있었냐"는 질문에 "정부 개편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고 비껴갔다. 한 공익위원은 "할말이 없다"면서도 "사전에 (노동부로부터) 이원화 방안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개편안 관련해서는 "정부가 최저임금으로 공격받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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