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탁 공인노무사(노노모 회원)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무엇을 하고 지내냐”고 물어 요즘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해 줬다. 그러자 “생소한 것이라 잘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듯 대학원에 진학해서 시작하게 된 ‘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을 위한 지역대비체계 구축’은 지인들 모두에게 생소했다. 나 역시도 처음에 그랬다.

2012년 9월 구미 국가산업단지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고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던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누출된 불산가스는 근처 마을로 확산돼 농작물과 가축에게 피해를 입혔고 피해액이 약 177억원으로 추산됐다. 이 사고를 시발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013년 화학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기존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을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학물질등록평가법)으로 개정하는 작업을 했다. 그럼에도 201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88건의 화학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매년 30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노동자들은 작업 중이었거나 작업장 주변에 있어 누출된 화학물질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화학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지금도 발생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화학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사고 장소와 가까운 곳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사고 대응을 가장 먼저 하는 현장의 노동자가 1차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이후 상황이 커지게 되면 피해는 사업장 주변지역 주민들이 받게 되는데, 내가 하는 일은 사업장 밖으로 피해가 확산됐을 경우를 대비·대응하기 위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예방도 포함돼 있다. 이 체계의 구축으로 직접적인 효과를 보는 이들은 지역주민이다. 하지만 사업장 노동자들도 사업장 안전관리가 보다 철저하게 이뤄지면서 반사효과를 볼 수 있다.

체계 구축을 시작한 지역의 한 사업장에서 과거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기에 시민사회에서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정부 등 관련 기관에서 원인조사를 하고 사업장에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게 했다. 원인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해 다시는 동일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유지·보수를 하기로 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몰랐던 사업장에서 화학사고를 경험함으로써 문제점을 찾게 됐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안전해졌다.

하지만 안전에 대해 항상 만전을 기해야 함에도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관심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매번 반복돼 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체계를 가져야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인 시민감시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이 활동을 통해 깨끗한 환경을 누리는 것에 덤으로 사업장에서도 관리를 함으로써 화학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됐다. 이 지역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시민사회가 노동조합과 함께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사업장에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보요구 등을 하는 식으로 관리해 나가는 상시적인 관리체계가 구성돼야 한다. 그래야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도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업장 내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정보를 노동자들에게 게시·주지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있지만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아직도 모든 정보를 다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도 사업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이 어떤 위험이 있는지 잘 모른다. 위험은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를 때 가장 위험하다. 어떤 위험이 있고, 그 위험을 관리할 수 있을 때부터는 덜 위험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장에 있는 화학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이 함께 알기 위해 움직여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인 ‘알권리’를 적극 이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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