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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단상
▲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흥미진진한 풍경이었다. 세종대왕이 경계를 섰다. 세종대왕 앞뒤를 차지한 두 세력은 중재자 없이는 이념과 정치를 얘기하면 안 되는 사이였다. 그러다간 반시간도 안 돼서 판이 엎어지고 주먹다툼이 벌어질 게 뻔했다. 70년 전 해방정국에서는 서로 죽이던 사이였다. 먼 과거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불과 9개월 전만 해도 그 자리의 세월호 조형물은 상대방을 향한 분노의 희생양이 돼 부서졌다.

세종 뒤는 태극기혁명운동본부와 대한애국당의 문재인정부퇴진 국민총궐기대회였다. 서울역에서 집회하고 행진해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박근혜 석방을 촉구하는 100차 태극기집회였다. 세종 앞은 김용균 시민대책위와 공공운수노조의 2차 범국민추모제였다. 집회가 끝나면 청와대까지 행진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비정규직에게 전가되는 위험의 외주화를 끊으려는 집회였다. 2018년 12월29일 저녁 어스름 광화문이었다.

두 세력은 한국 사회 이념좌표의 양끝에서 첨예하게 갈등하는 관계였다. 그럼에도 평화로웠다. 평화에는 경찰 울타리 영향도 있었지만, 그 정도쯤이야 이쪽이든 저쪽이든 작심하고 덤벼들면 부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앞뒤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각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나에게 그 풍경은 광주항쟁이 남긴 큰 숙제 하나가 실현되고 있다는 증표로 읽혔다. 광주항쟁의 피가 남긴 과제는 민주주의였다. 몇 년 흐르고 또 10년쯤 지나면 한국에서도 좌우가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는 한층 성숙한 민주주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거쳐야 할 과정은 첩첩산중이지 싶었다. 둘 다 세종대왕이 창시한 똑같은 한글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은 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뒤도 앞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앞과 뒤의 말은 서로에게 외계어였다. 아니 실은 앞과 뒤가 상대방의 말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중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면 밥을 같이 먹고, 또는 어떤 자리에서 술잔을 주고받는 관계일 텐데도, 서로를 그냥 무시했다.

그러면서도 앞과 뒤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쪽은 퇴진이고 한쪽은 비판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양쪽 칼끝이 향하는 지점은 대통령이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행위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다. 문제가 있으면 비판하고 퇴진시켜야 한다. 내가 답답했던 것은 한국의 정치든 운동이든 종내 대통령 한 사람으로 향하는 뻔한 각본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반복됐던 판에 박힌 그 각본이 이후로도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일상시대의 정치와 운동은 상대방과의 직접 싸움보다, 싸움을 관전하는 대중을 자신의 편으로 묶어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매달려 아득바득 끝장을 보려는 방식의 하수로는 안 된다. 그것은 동네 골목싸움에서나 통하는 방식이다. 중원을 도모하려면 상대방을 지탱하고 있으면서도 눈앞에 보이지 않는 밑바탕의 기반을 무너뜨리려 애쓰는 고수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방의 밑바탕까지 동의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하고 종합적인 앞날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함께 목소리를 내며 주체가 돼 움직일 수 있다. 그래야 보수든 진보든 그 힘을 배경으로 상대방마저 자신의 청사진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보수나 진보나 한국 사회를 어떻게 이끌고 가겠다는 종합 청사진이 없다. 그때그때의 사안에 머문 채 상대방의 약점과 실수에 기대며 대통령 보호·비판에 열을 올리고 눈앞 성과에 급급한 수준이다. 대중의 의식과 행동에 진전이 없고 정치·운동의 발전도 없는 엎치락뒤치락 반복이 있을 뿐이다. 증거는 답이 없는 극단의 양극화와 노동 분단, 그리고 불안정 사회다. 김영삼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26년, 여섯 번째 대통령이지만 보수가 기치로 삼고 있는 사회 안정도, 진보가 기치로 삼고 있는 불평등 완화도 나아질 기미는커녕 심화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은 5년마다의 대통령선거 거수기로 멈춰 있다. 대통령을 뽑은 국민 다수가 얼마 안 있어 제 손가락을 탓하는 웃픈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나 또한 풍경 속의 한 구성원으로 전태일을 생각했다. 현시기 진보의 뿌리는 80년대다. 청와대의 문재인 대통령도 여의도의 민주와 정의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도 다르지 않다. 진보가 혹한의 80년대를 버티며 밀고 나올 수 있었던 원천은 두 개의 심장이다. 광주항쟁과 전태일이다. 심장 하나는 꽃을 피우고 있는데, 심장 하나는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전태일의 꿈은 여태까지 이뤄지지 않고, 전태일은 아직 고통스럽게 불타고 있다.

진보가 다시 전태일정신을 품으면 안 될까. 전태일이 재단사인 제 임금 올리려 고군분투한 것이 아니라 시다와 미싱사,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비정규직을 위해 결단한 것이라는 전태일의 핵심 정신을 다시 부여잡으면 안 될까. 장시간 노동에 배곯는 비정규직들에게 제 차비로 풀빵을 사 주고 저 또한 장시간 노동에 지친 늦은 밤 휘청휘청 걷고 뛰며 퇴근하던 전태일의 풀빵정신을 현실에 적용해 보면 안 될까. 한쪽 눈을 팔아서라도 노동권이 보장되고 사회에 울림을 주는 모범업체를 만들려 했던 정신을 되살리면 안 될까. 광주항쟁 심장과 전태일 심장이 함께 박동해야 하는데…. 그래야 김용균이 더는 안 죽는데….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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