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석군 변호사(법무법인 민국)

지난해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계속 지체됐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해를 넘기기 며칠 전인 지난달 27일 드디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 개정안으로 땅콩회항부터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최근 양진호씨 폭행사건까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던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정의부터 대책까지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게 됐다.

개정안은 ‘직장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직장내 괴롭힘 발생시 누구든지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그 신고를 접수하거나 괴롭힘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사용자는 피해 근로자의 의견을 수렴해 근무 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의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당초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에서 정서적 고통이 삭제되고 업무환경을 근무환경으로 변경했으나 큰 틀에서 변화 없이 통과됐다. 이 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뒤 시행될 것이다. 이와 함께 직장내 괴롭힘으로 발생한 질병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과 정부의 직장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치 기준 마련 및 지도·지원 의무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함께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판례들로 그 사안을 인정받았던 사례 수준의 것으로 특별한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줄기차게 문제됐던 직장내 괴롭힘 사건들에 대한 노동법적 규율 근거가 마련됨으로써 노동자들이 직장내 괴롭힘에 관련된 업무환경 개선을 사용자측에 요구할 수 있고, 직장내 괴롭힘 사건에 있어 사법기관 판단에 앞선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할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적지 않다.

늦었지만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근거규정 마련은 축하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개별적 노사관계법 규율만으로는 직장내 괴롭힘을 해결하기는 부족하다.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주적인 요구와 협상을 통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길은 아직 요원하다.

재벌총수 갑질로 직장내 괴롭힘의 대표적 사건으로 회자되던 땅콩회항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피해자인 박창진 사무장은 평승무원으로 강등된 채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이를 도와야 할 대한항공노조는 오히려 박 사무장을 노조원에서 제명했고, 박사무장은 대한항공 내 네 번째 노조인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의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직원연대는 당초 1천명의 노조원을 모집하고 노조명단을 공개한 뒤 사측과 상견례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노동자들의 참여가 저조해 현 상황에서 노조명단을 통보하고 상견례를 갖기로 했다.

열악한 간호사들의 노동환경과 특유의 조직문화가 부각됐던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도 동료들의 참여가 저조하다. 산재보상 신청과 민사소송 등 법률적 대응이 진행 중이며 특히 고박선욱간호사공동대책위원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대책위는 1인 시위,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사건의 문제점을 알리고, 법 개정을 촉구했다. 또한 12월 말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앞에서 ‘응답하라, 서울아산병원’ 집회를 통해 사측의 사과를 촉구했다. 그러나 아산병원 내 노조는 어떠한 협조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태움’은 간호사들 상호 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것으로 당사자들 스스로 참여가 쉽지 않은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다른 누가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조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다른 도움들도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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