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금속노조 조합원

10년 전 미친 짓을 했다

2007년 금속노조 단체교섭실장이었다. 재벌들은 중앙교섭을 하면 현장 갈등과 고임금 부담을 줄일 수 있냐고 했다. 대기업 노조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은 빤했다. 중앙교섭으로 직진하기 어려우니 노사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논의를 거쳤다. 재벌대기업은 안 될 것으로 예상하고 외자 대기업과 먼저 합의하면 따르겠다고 했다.

외자 대기업과 완전하지는 않지만 합의를 했다. 그러나 재벌사가 약속을 어기려 했고 해당 지부도 약속을 틀었다. 노조 안 강경파는 미흡한 합의라고 비판했다. 합의를 폐기했다. 노사교섭보다 노조 내부교섭력이 중요함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산별노조 중앙보다 기업지부 힘이 세다. 기업지부가 흔들면 중앙도 흔들린다. 지방군벌체제를 닮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파업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 힘을 빌려도 쉽지 않은 산별교섭은 정부와 적이 되면서 물 건너갔다.

단체교섭실장을 그만뒀다. 산별노조 연구자와 노조간부들이 참여한 공개토론회에서 "이 상태에서 산별중앙교섭 쟁취는 미친 짓이다. 그만하자"고 털어놨다.

10년 지나니 또…

2018년 금속노조 지도부는 산별임금체계를 위한 노사공동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중앙교섭을 임금체계 논의구조로 변형해서 만들겠다는 얘기였다. 촛불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정세를 이용하면 노사공동위를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10년 전 결론 났던 걸 다시 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금속노조에는 산별임금체계안이 없다. 대기업 사용자를 유인할 내용도 없다. 한 기업지부는 '상박하후 임금'을 주장했다. 대기업 임금을 적게 올리더라도 중소기업을 많이 올릴 구체적 방안이 없으면 '쪽박'이 될 거라 예상했다.

결과는 어떨까. 금속노조는 조합원 상경투쟁을 했다. 하지만 산별임금 노사공동위를 전 조직적 합의로 이끌어 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한 기업지부가 예년보다 일찍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산별임금 노사공동위 구성을 구두로 합의했다는 야릇한 소식만 들었다. 하청 부품업체 임금을 많이 올리기 위해 어떤 걸 했는지 알지 못한다.

2018년 돌아보면 보인다

한국 경제는 재벌중심 수직종속구조를 가지고 있다. 노조도 산업구조에 영향을 받아 대기업지부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런 조건에서 수평적 산별교섭은 어렵다. 그럼에도 새로운 전략 없이 과거 산별중앙교섭을 산별임금체계를 위한 노사공동위로 이름만 바꿔 추진한 것 같다.

한국의 노동이슈·산업정책·경제민주화 등 많은 의제에 연관돼 있는 광주형 일자리는 재벌과 정치관료를 거치며 뒤틀리고 완성차 조합원 일자리 지키기와 지역갈등의 늪에 빠진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기대한 정규직화는 '사용자-정규직-비정규직 삼각관계'에 휩싸이고, 최저임금 인상은 역공에 밀리고, 노동시간단축은 탄력근로로 되치기 당할 우려가 있고, 한 지역지부에서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유성기업지회는 폭행 문제로 역공을 받았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는 청와대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여러 노력이 함께 작용하면서 복직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직접고용과 함께 조합원을 4배 늘었다. 모듈부품사 노조가 생겨 전국 조합원이 5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포스코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조합원이 늘었다고 한다.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자

곁에서 봐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분명하게 보인다. 금속노조는 18만 조합원에 풍부한 재정은 물론이고 전국 조직망까지 가지고 있다. 큰 장점이다.

장기 고공농성과 단식농성을 하는 곳에 잠깐 들렀다. 넓지 않으니 높이 올라간다. 공감이 약하니 악만 남는다. 대중 참여가 약하니 정권을 쑤신다.

낡은 발상과 오랜 인적구성을 넘어서지 못한 채 "한다면 한다"고 외치면 공룡이 될 것 같다. 새로운 간부와 지도력을 키우면서 "안 되면 만다"며 단절할 건 단절하고, "되는 걸 한다"는 발상을 하면 어떨까.

반복하는 내용이 가득 찬 조직발전전략을 가지고 정책대의원대회를 한다고 들었다. 두근거리는 비전이라는 느낌이 없으니 현장이 시큰둥한 모양이다. 금속노조가 노조 밖 노동시민에게 주목받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재정·인력·네트워크를 가진 금속노조를 노동시민이 '비빌 수 있는 언덕'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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